"할머니, 어제 좀 섭섭허셨지유?"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11.26 08:02수정 2001.11.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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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위해 재미있고 아름다운 동화들을 이 세상에 많이 남겨놓으신 아버님을 닮아서인지 나도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특히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어린아이들을 굉장히 예뻐하지요. 평소 아무 아이나 안아주고 뽀뽀해주기를 좋아하는 버릇은 스무 살 이전의 청소년 시절부터 있었던 일이랍니다.


청소년 시절 이웃집 사내아이를 예뻐하면서 얼굴에 뽀뽀를 너무 많이 해대니까 그 아이 엄마가 "그러다간 우리 애 볼때기 남어나지 않겄다"라고 걱정도 했고, 동네 아줌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넘의 새끼두 저렇게 이뻐허니, 후제 결혼헤서 지 새끼 낳으면 증말루 불때기 남어나지 않을 겨"라는 예언들을 하기도 했지요. 그때의 그 이웃집 아이는 어언 삼십대 가장, 남매의 아빠가 되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만큼 나는 애 보는 일도 잘한답니다. 지금은 중2에다가 초등학교 5학년인 내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는, 나는 완전히 '애보는 남자'였지요. 하루에 두 번씩 정확히 쉬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차에 태워 초등학교 후문 앞으로 가서 학교 선생님인 엄마의 젖을 먹이곤 했었지요. 생각하면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그 시절이….

지난주 성당에서 만난 한 새내기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아기를 안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영 엉성하더군요. 그래서 가장 편하게 아기를 안아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요. 한 손으로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고, 한 팔로는 아기의 배를 감아서 아빠의 배에다가 아기의 등을 붙이는 식으로 안는 거지요.

갓난아기가 아니라면, 그렇게 안아주는 것을 아기들은 제일 좋아한답니다. 아기에게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아기는 세상 사물을 뒤에 두지 않고 마주보는 형태가 되어서 그것을 더욱 좋아하는 거지요. 하여간 그렇게 안는 것이 안는 사람에게나 아기에게나 가장 편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두세요.

나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고아들을 보게 되거나, 어른들의 '아동학대' 장면을 보게 되면 너무 애처롭고 속이 상해서 밥도 잘 먹지 못합니다. 나는 자기 어린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비,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의붓어미를 가장 증오합니다. 새장가를 든 아비가 어린 자식들을 학대한 사건을 접하고서는 울분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적도 있지요.


아무튼 나는 자식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부모, 남의 아이를 유괴하는 사람들을 가장 악독한 부류로 칩니다. 제발 이 세상에서 그런 부류의 인간들만이라도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엉뚱한 일을 하나 저질렀습니다. 나는 2층짜리 23평 연립주택의 아래층에서 살고 있지요. 아침나절에 거실 컴퓨터 앞에서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위층의 4살 짜리 여자아이 수연이가 바로 우리집 문 앞에서 울기 시작하더군요.


아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갑이 조금 넘은 기력 좋으신 할머니가 같이 있었는데, 할머니와 어린 손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울기 시작한 수연이를 그냥 떼어놓고 이층으로 올라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수연이는 큰소리로 악을 쓰며 울었습니다. 길게 뽑을 게 뻔한 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간 할머니는 이내 내려오지도 않고 어떻게도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더욱 큰소리로 울고….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한창 글을 쓰는 중이어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기가 싫었습니다. 남의 집 문 앞에서 큰소리로 우는 아이보다도, 우는 아이를 그렇게 방치하고 있는 할머니가 얄미웠습니다. 너무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다음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울지 마! 뚝 그쳐!"
벽력 같은 소리에 아이가 한 순간 찔끔하는 듯하더니, 금세 다시, 이번에는 더욱 큰소리로 울음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더욱 난감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글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를 싸쥐고 있자니, 방에서 묵주기도를 하다가 말고 황급히 나오신 어머니가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를 듣고서야 이층집 할머니가 내려오셔서 아이를 달래며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냉큼 뛰어들었습니다. 수연이 할머니가 내 고함소리를 들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그랬지?하는 생각이 자꾸만 왕왕거렸습니다. 내가 순간적으로 실수를 한 것이 참으로 분명하였습니다. 본의 아닌 그 순간적인 실수가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만큼 수연이와 할머니에게 미안해지는 마음도 한량 없었습니다. 나는 결국 글쓰는 일을 한참이나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연이의 울음이 그친 상황인데도….

나는 정말 나 자신이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늘 실수할 가능성을 안고 사는 법이고 나도 그것에서 예외일 수 없지만, 집 앞에서 우는 이층집 아이를 나가서 달랠 생각을 하기는커녕 거실 의자에 앉아서 버럭 고함을 친 것은 평소의 나답지 않은 참으로 우스운 짓이었습니다. 아이보다 아이의 할머니를 겨냥한 고함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에게 고스란히 부끄러움으로 남고 만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명색이 글쓰는 사람이라는 나를 수연이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고, 우리집 문에 천주교 신자 집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또 수연이 할머니가 어떻게 볼지도 걱정이었습니다(수연이네는 종교가 없는 것 같지만, 수연 엄마가 안식일교 계통 중학교의 선생님이어서인지…).

수연이네는 내가 매주일 해미에서 길어오는 물을 두 통씩 주는 집이었습니다. 평소 허물없이 지내는 이웃인데, 내 집 문 앞에서 아이가 좀 울었다고….

그러길래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다음날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동네 주변 9개의 가로등과 방범등을 모두 끄고 와서 집 앞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으려니, 매일 새벽마다 백화산을 오르시는 수연이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말을 건네었습니다.

"할머니, 어제 좀 섭섭허셨지유? 수연이가 우리집 문 앞에서 울 때 내가 버럭 소리를 질러서…."
"아니예유. 내가 더 미안허지유."
그러더니 수연이 할머니가 멋쩍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화장실이 좀 급해갖구…."
"그류이잉? 난 그런 것두 물르구…."

나는 껄껄 웃으면서도 내가 어제 순간적으로 너무 경솔했음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개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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