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깃들여 산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눈에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지만 옛 사람들은 바람과 구름과 안개와 이슬의 흔적을 나무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람이 세상을 항해하는 모습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손짓에 담겨 있고 구름의 흔적은 나뭇가지의 지향점 위에 남아 있다.
안개와 이슬은 나무에 물방울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그 나무의 영혼에 자신과 종족의 소망을 기원했었다.
우리는 그런 나무의 도드라지지 않은 채 보여주는 일상에 대한 애틋함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었다.
가슴 답답한 일이다.
세상 그 모든 것이 허투루 서 있는 것 없듯이 나무는 그 몸에 세상의 흔적을 담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어 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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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만난 사연을 간직한 은행나무. 전라도 담양의 후산마을 은행나무입니다. 조선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천하를 다스릴 꿈을 안고 세상을 주유하다 이곳에 사는 오희도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말을 걸어 두었다고 해서 이 나무를 '인조대왕계마행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우러러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 전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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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무는 그 스스로의 고단한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에게 수없이 많은 수혜를 풀어준다. 자연을 담아 집을 짓도록 나무는 우리에게 들보의 역할을 해준 것뿐만 아니라 땔감이 되어 추위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흉작으로 굶주려 있을 때 나무의 열매는 그들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덕분에 민가와 가까운 곳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은 것이고, 깊은 산에서는 굴참나무 껍질을 벗겨 집을 지어낸 굴피집이 있고, 우리가 밥을 담아 먹었던 그릇이 나왔고, 천년의 세월에도 주저앉지 않는 화려하지 않고 검박한 자연미를 간직한 절집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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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메마을 강변 미루나무. 물속에 풍덩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잎새를 떨구어낸 덕분에 크낙한 까치집에 저멀리 산자락과 하늘까지 지고 있는 나무가 안스러워 보입니다. ⓒ 전고필 |
그 나무들이 이제 입을 떨구며 세상과 이별을 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잎떨어짐이 그들이 접해온 익숙한 것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떨어지는 잎은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가 어미나무의 거름이 된다. 그래서 나무의 줄기를 타고 거듭난다. 순환의 고리에서 나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별똥이 떨어지는 밤 우리는 한 생명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날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믿어왔다.
나무 또한 사람과 똑같은 이치이다. 달과 별을 감싸주었던 그가 세상에 추락하는 날은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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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배. 강변에 나갔더니 갯버들의 바짝 마른 나뭇잎이 찰싹 물 위에 올라서고 있었습니다. 언제 곤도라 같은 모양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무거운 잎자루는 강심에 몸을 담그고 굽은 잎은 자연스럽게 뱃머리가 되어 바람에 유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분간은 그렇게 떠다니며 늘 매어 있던 부자유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만끽하길 바랐습니다. ⓒ 전고필 |
그 별들이 나풀거리는 골짜기 그 어느 곳이거나 이미 초췌한 모습으로 무리를 이루고 쌓여 있는 능선 어디메가 되더라도 그들은 다시 나무의 모습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우리네 인간은 스스로 부활의 기회를 자꾸만 잃어가고 있다. 나무가 보이지 않은 날부터 그래왔던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일까?
지금 숲에 가보길 바란다. 아니면 내 집 그림 창문에 끼어 있는 한 그루 나무라도 바라보아라. 너무나 애틋하게 바라보면 눈물이 날 것이다.
겨울이 오는 길목 눈물 한줌 주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그대가 세상의 나무 한 그루가 된다면...
덧붙이는 글 | 얼마전 가을 편지에 은행나무가 보고 싶다는 독자분의 요청을 받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중에 저희 지역 여행안내 방송 대본으로 준비했던 글을 다듬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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