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국가(Rogue States)

등록 2001.11.28 00:11수정 2001.11.2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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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
카불, 쿤두즈 등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들이 속속 북부동맹에 함락되고 있고, 많은 탈레반 병사들이 전장을 이탈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근거지인 남부의 칸다하르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탈레반 세력과 점점 그물을 조여가고 있는 미군과 북부동맹의 대결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압도적인 화력의 우위 앞에 선 탈레반의 운명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모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복전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은 탈레반이라는 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해 나가고 있다.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폭격과 '북부동맹'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목적을 달성해가는 미국의 전쟁방식은 '전쟁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미국인의 분노를 전쟁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낸 현재의 미국 정부, 미국의 파워에 휘둘리는 국제사회, 그리고 탈레반에 밀려날대로 밀려나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북부동맹...

이번 전쟁은 이 3가지 요인이 오묘하게 작용하여 이룩한 결과다. 물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이러한 여러 요인을 적절히 배치하여 자국의 목적을 200% 실현하고 있고, 이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미국은 또 하나의 불량국가(Rogue state)를 제거하고 있다. 마치 10년전 불량국가의 '대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를 두들겨댔던 것처럼 말이다.

불량국가라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편입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잘 갖다 붙이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테러나, 마약 등과 같은 국제적 범죄를 이유로 한다. 이라크, 쿠바,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이 오랫동안 불량국가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그러한 낙인으로 인해 금수조치, 봉쇄 등의 제제를 당한 지 오래되었다.


이들 불량국가는 미국이 주도하고 세계가 승인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악마적 존재'가 되어 있다. 그들 국가의 권리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그들의 권익은 대변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안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백해무익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불량국가들에 대한 시각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강대국, 내부 규제 없이 국제사회의 큰 형님으로 행세하는 서구 강대국들이 대거 이런 불량국가의 개념에 들어가기도 한다.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는 그의 저서 'Rogue States'에서 폭압적인 초강대국 '미국'의 추악한 면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지정하는 이른바 불량국가들은 오히려 현존 세계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불복종 국가'일뿐이며 정작 불량국가는 세계라는 무대위에서 오만불손한 큰 형님으로 이름난 '미국' 스스로와 이를 위시한 서구 강대국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 속에서 촘스키는 미국을 비판하면서 '자국의 이익'이라는 잣대로 모든 일에서 독단을 저지르고 있는 미국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테러와 비극의 '당사자'이자 '공범'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탈레반을 키우고 소련이 붕괴하자 가차없이 그들을 버렸으며, 이제는 오만한 미국의 심장에 총을 겨누고 나선 그들을 반인륜적 집단으로 규정하여 '청소'해가고 있는 모습을 그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는 비단 아프가니스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는 아니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 후세인에게 폭탄비를 퍼부었던 미국은 후세인이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를 사용해가며 학살할 때는 침묵하고 있었다.

이른바 라틴 아메리카나 동남아시아의 독재자들 중 '미국의 친구'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의 '국가에 의한 국민살인'은 미국에게 별다른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세계체제'의 강화에 열성적으로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 Noam Chomsky, 「Rogue States」中


세계적 질서, 국제사회...
이른바 인류의 공존을 위한 지구적 체제의 핵심에 존재하는 불량국가 미국. 무소불위의 권력과 군사력의 국가, 미국이 만들어낸 이른바 '불복종 국가'의 하나가 사라져가고 있다.

붕괴하는 불복종 국가의 한가운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포로로 붙잡힌 탈레반 병사들을 '전범재판'에 넘기지 말고, 감금하거나 사살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국방장관인 나라는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미국이 아닌가.

탈레반이 얼마나 비열하고 광적인 살인자들인지 나는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그들에 대한 판단은 그들을 알고 있는 각자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불량국가 미국은 불복종 국가 하나를 제거하고 또 다른 '미국의 친구'를 만들어낼 것이며, 그들은 불량한 국가에 의한 불량한 세계사회를 이끄는데 복무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앞길에 아무런 죄악이 없는 민중에게 엄청난 참상과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거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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