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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지요.
최근의 제 글에 답글을 달아주신 것을 보고 우선은 반가웠습니다. 종종 제게 간단 명료하면서도 의미 심장한 격려와 성원을 표현해 주셨던 분이기에…. 그리고 한동안 종적이 없으신 듯하여, 제 글에 대한 모든 '독자 의견'들을 제 홈의 '독자 게시판'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 한두 번 궁금증을 가졌던 분이시기도 해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시는 님의 '생업 현장'의 풍경이 절로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경력 25년이 자랑스럽기보다는, 그것이 퇴출 우선 순위를 정하는 낙인에 불과하다는 말씀에는 제 가슴이 아릿해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야 직업 전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절절하게 그 현실 체감을 공유하는 것일 테지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운아들이라는 말씀에는 제 마음이 한구석 송구스러지는 것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저는 어느 면으로는 행복한 사람임을 다시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과 연관하여 때로는 과도한 고뇌들을 끌어안고 살기는 할 지언정, 그 고뇌의 실상을 그려내고 꿈과 희원들을 인터넷 게시판 상에서나마 펼쳐 보이며 살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행운일 수 있음을…! 제가 끌어안고 있는 무릇 세상 일에 대한 고뇌 자체가 저의 행운과 행복을 구성한다는 사실―그것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저는 새삼스럽게 좀더 행복감을 얻는 듯싶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피눈물나는 곡절이며 악조건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걸머지고 나아간다는 것은, 궁극의 희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기에…!
아무튼 바쁜 시간 속에서도 님이 알뜰히 적어놓으신 답글을 곰곰이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행복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제 눈길이 오래 머물더군요. 마음이 숙연해지는 가운데서도, 님이 그렇게 파악해 주신, 즉 제가 지닌 그 '행복'의 여러 가지 중층적 의미들을 새롭게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런 식의 행복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님의 그 표현이 내가 하루 생활의 많은 부분을 컴퓨터 앞에 놓고 살 수 있는 현실적 조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런만큼 저는 제가 지닌 행복을 좀더 잘 보듬어 안고 한결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나의 이 행복이 참다운 '삶의 십자가'이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그런 식으로 제게 지지와 기대를 표현해 주신 님의 후의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님이 인천 거리에서 "매일 매일의 헌혈 목표를 달성하냐 못하냐를 가지고 노심초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그 모습이 절로 눈앞에 환히 그려지면서 제게 헌혈에 관한 회억들을 갖게 하더군요. 덕분에 제 젊은 시절의 자못 아름다웠던 모습 한가지를 즐겁게 추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오십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몸도 성치 못하고, 채혈 차량도 볼 수 없는 곳에 붙박혀 살다보니 헌혈이라는 것과 완전히 멀어진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헌혈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 그 알토란 같은 청춘 시절을 객지 유랑 생활로 낭비(?)했습니다. 마산화력발전소와 서울 아파트공사장들과 경기 남양만의 간척공사장 등을 전전했지요.
서울 거리에서 노동자 생활을 할 때는 지금 KBS의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는 '태조 왕건' 작가인 이환경 씨를 만나 그에게 원고지 사용법 등 기초적인 글쓰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지요(이 얘기는 내쪽에서 먼저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여러 지면의 인터뷰 기사에서 내 얘기를 해서…).
그 시절에는 고달프게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헌혈을 자주 했습니다. 객지 유랑 생활 전후 집에서 살 때도 서울 출타를 하게 되면 서울 출타 기념으로 매번 헌혈을 하곤 했습니다. 거리의 채혈 차량을 보게 되면 꼭꼭 스스로 걸어가서 차에 오르곤 했지요. 헌혈을 몇 번이나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50번 이상은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 한 번도 흰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붙잡힌 형국으로 마지못하여 한 적은 없습니다(최초의 헌혈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만…).
헌혈의 횟수야 수십 번에 불과한 적은 수지만, 채혈 차량 앞을 지날 때마다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곤 했던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헌혈을 할 때의 기분이 참 좋았던 듯싶습니다. 침상에 누워 예쁜 아가씨 손에 팔을 내줄 때의 약간 긴장되는 기분도 좋았고, 팔뚝에 채혈 주사 바늘이 꽂힐 때의 짧은 통증은 상쾌한 기분을 갖게 하곤 했지요. 내 몸에서 뽑혀져 나와 비닐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혈액을 보면서, 저 피는 누구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공연히 감미로운 의문을 품어보기도 했지요.
정말이지 나는 그 공연한 의문이 감미롭고도 즐거웠습니다. 내 피가 누군지 모를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 그리하여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릴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나를 매번 고무했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은 절로 상쾌해지는 듯했습니다. 지금 당장 인지(認知) 가능한 사람이 아닌,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의 몸속으로 내 몸에서 만들어진 피가 들어가게 되고 그리하여 그의 생명을 돕게 된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조금은 신비스럽고도 엄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헌혈을 할 때마다 내 몸이 건강하다는 사실, 내 몸의 청결 상태도 잘 유지해 나가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도 각별한 즐거움이었지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헌혈 사실을 자랑했다가 되레 걱정을 산 다음 어머니께 헌혈에 관한 지식과 의의를 설명해 드리느라 한참 수고를 했던 일도 즐겁게 회상되는군요.
헌혈을 하면 받게 되는 '헌혈 증서'에 대해서도 한마디 적고 싶군요. 처음부터 헌혈 증서는 잘 챙겼던 듯싶습니다. 하지만 헌혈 증서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은 별로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고, 일종의 반대급부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왠지 뜨악하게도 느껴져서 그 증서들을 알뜰히 간직하지는 않았지 싶습니다. 그래서 객지 유랑 생활 시절에는 헌혈 증서들을 여러 장 분실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후에 알뜰히 보관했던 증서들은(확실한 장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분에게 인심을 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난 9월 제 노모님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 출입을 하게 되었을 때 저의 옛날 원고 궤짝 속을 뒤져보았더니 넉 장의 헌혈 증서가 나오더군요. 1980년과 81년 사이에 헌혈을 한 증서들이었습니다(그때의 헌혈 증서만 남아 있는 것은, '광주사태'를 의식하고 헌혈을 했기에 기념으로 따로 보관을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헌혈 증서가 넉 장이라도 남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의 치료비가 엄청 많이 나올 줄로 겁을 먹고, 그 증서들을 대전성모병원으로 가지고 갔지요. 그런데 치료비가 예상보다 적게 나온 데다가, 어머니께서 헌혈 증서들을 그냥 간직하라고 하셔서 활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몇푼 혈액값을 환불 받느라 시간 쓸 것 없이, 그냥 간직하고 있다가 헌혈 증서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인심을 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20여 년 전의 그 혈액 증서들은 다시 내 지갑 속으로 들어가 지금도 잘 보관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들어서는 헌혈을 거의 하지 않았지 싶군요. 별로 도시 출타를 하지 않고 살아서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내가 당뇨를 갖게 된부터는 아예 헌혈 생각을 하지 않았던 탓인 것 같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통풍 환자에다가 당뇨 환자입니다. 실은 이런 병들 때문에 더욱, 거의 매일같이 저녁 무렵에 우리 고장의 백화산을 오르곤 하는 거지요.
절제와 운동 덕분에, 매일같이 일을 많이 하고 살아도 혈당 조절은 잘되고 있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을 마음놓고 못 마시는 것 때문에 때로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기도 하지만…. 요즘은 이틀마다 혈당강하제 한 알씩을 먹고 사는데, 약을 먹지 않고 한번 혈당 체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지난 1997년에 내가 당뇨 환자라는 것을 안 후부터는 건강치 못한 혈액을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아예 헌혈 생각을 내 의식에서 지워버렸던 거지요. 그런데 병원에서 얘길 들어보니 당뇨 환자도 헌혈을 할 수가 있다더군요. 채혈된 혈액들은 모두 세밀한 검사와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채혈 차량과 만날 기회가 오면 꼭 헌혈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인천을 가는 편인데, 언제 한번 또 인천엘 가게 되면 일부러 길거리의 채혈 차량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차량에 가서 꼭 헌혈을 하겠습니다. 흰 가운을 입으신 분들 중에 중년 남성이 계실 것 같으면 혹 '어진내' 님이 아니시냐고 여쭈어도 보고….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자진해서 헌혈을 많이 했으면 싶습니다. 헌혈은 가장 간편하면서도 확실하게 남을 돕는 방법이라는 생각들을 나누어갖고…. 자기 몸속의 피를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참으로 의미 심장한 사랑의 나눔이지요. 그것은 피와 함께 자신의 맑고 뜨거운 정신을 나누어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거리의 채혈 차량을 그냥 비켜 지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매일매일 헌혈 목표량 달성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는 어진내 님의 그 짐도 절로 가벼워졌으면 싶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따 저녁 무렵에는 다시 백화산을 오르게 되고, 산을 오를 때는 꼭꼭 '묵주 기도'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우리의 '헌혈 문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님께 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경력 25년이 보람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생활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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