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통해 보기 - 관음과 풍경

신경철 사진전시회 <하얀풍경 White Landscape>

등록 2001.12.05 10:46수정 2001.12.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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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통해 본다는 것은 으레 관음(觀淫)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조그만 구멍이나 창문을 통해 보는 남녀의 속삭임, 포옹, 입맞춤. 혹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수학여행을 떠난 경주의 한 대형 여관. 호텔처럼 거대하지만 시설은 싸구려 여인숙에 지나지 않는 그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길을 잃고 방을 찾지 못한 우리는 어느 별관 앞에서 숨을 죽였다.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드러난 나체의 남녀. 우리는 미성년자라는 이유가 무섭고 부끄러워 얼른 자리를 떴다.


그러나 사진작가 신경철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구멍이나 창문을 통해 보는 것은 관음스럽고 사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이며, 시간이며, 기억이다.

신경철은 창과 문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던 창호(窓戶)의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본 유년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걷지 못했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히거나 아버지의 팔에 안겨 볼 수 있었던 유리창 바깥의 세상. 조금 자랐을 때는 눈높이가 맞을 때까지 까치발을 들고 보았던 창호 바깥의 세상. 성숙한 뒤에는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던 바로 바깥의 세상. 가족을 이룬 뒤에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끊임없이 응시하던 바깥의 세상이 신경철이 창호의 유리창을 통해 보는 풍경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사진들은 창호문에 붙은 유리창으로 전이(轉移)되어 보여진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풍경 그대로이거나 작가가 포착한 순간의 기억이다. 그 풍경 속에는 겨울이 있고 잊혀진 시간이 있다. 길이 있고 밭이 존재한다. 호기심과 근심, 걱정, 슬픔과 동시에 아름다움이 머무는 공간이 신경철이 보여주는 백색의 겨울이다.

그의 사진들, 아니 창호문의 유리창 너머로 그가 보여주는 풍경을 전면(前面)으로 하고 찰리 헤이든(Chalie Haden)과 팻 메쓰니(Pat Metheny)의 기타연주 'Two For The Road'를 듣고 있자니 시야 속으로 작가 신경철의 유년시절이 길처럼 뻗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니 후면(後面)으로 누군가 나를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 무표정한 얼굴 하나가 창호문 유리창 안쪽에서 나를 쳐다본다. 이것은 환영(幻影)인가. 혹은 풍경과의 교류(交流)인가.

작가 신경철의 전시회 <하얀풍경 White Landscape>는 인사동 사비나갤러리에서 12월 13일(목)까지 전시된다. (문의 : 736-4371)

덧붙이는 글 | * 신경철
1960 서울 생
1987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1995 미국 로체스터공대 영상예술대학원 졸업
현, 광주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사진영상전공 조교수

덧붙이는 글 * 신경철
1960 서울 생
1987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1995 미국 로체스터공대 영상예술대학원 졸업
현, 광주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사진영상전공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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