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형님의 명예회복과 함께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형수, 조카 그리고 형님 문제로 고통받은 동료 교수들에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건 없습니다. 28년전 제가 양심 수기에서부터 제기해온 의혹을 국가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지난 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사망한 최종길(당시 42세) 서울대 법대교수가 타살됐다는 당시 중정 간부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온 10일 최 교수의 동생 최종선(54) 씨는 착잡한 심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미국 워싱턴 D.C. 교외지역인 애난데일에 사는 최 씨는 "진실은 손에 쥐어졌었는데 그걸 확인하는데 28년이나 걸렸다"면서 "그것은 조국이 인권, 민주국가가 아닌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최종길 교수는 73년 10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중앙정보부(부장 이후락)의 조사를 받다 추락사한 상태로 발견됐으며 중정과 검찰은 최 교수의 사인을 간첩행위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받고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했다.
둘째 형인 최종길 교수의 사망 당시 중정 감찰실에 근무중이던 최종선 씨는 독자적으로 진상을 추적, 이후 정신병원에 위장 입원하면서 수기를 기록하는 등 지난 세월 동안 목숨을 걸고 형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 규명에 앞장서왔다. 올 봄에는 수기 '산 자여 말하라'를 한국에서 출간, 형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 씨는 당시 중정 간부가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에서 "수사관들이 최 교수를 중정 건물 7층 바깥 비상계단에서 밀어버렸다는 보고를 부하직원으로부터 들었다"고 한 진술에 대해 "일개 수사관들이 건강한 사람을 건물 밖으로 밀어냈겠느냐"며 "거기에는 떠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고문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타살임을 주장하고 있다.
즉 "수사관들이 형을 고문한 끝에 회생 가망이 없자 추락사나 투신자살을 위장한 것 아니면 고문으로 사망한 직후 밀어낸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최 교수 의문사 사건은 중정이 유신 선포에 따른 대규모 시위 사태, 김대중 납치사건에 따른 민심 이반 등을 만회하려는 차원에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려다 저지른 '실수'다.
정작 그가 분개하는 것도 "고문에 의한 과실치사는 실수라 할 수 있더라도 그 이후 중정과 검찰이 형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고, 서류를 조작하고 또 간첩으로 몰아간 행위"이다.
이를 '계획적 고의범'이라고 표현하는 최 씨는 "형의 죽음이 중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은폐 주역은 검사들"이라면서 검사 출신인 김치열 중정차장, 안경상 대공수사국장과 사건 조사를 맡은 이모 검사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검찰의 정치적 처신에 대한 자성을 촉구했다.
형의 죽음과 사건 조작에 관련된 자들의 처리문제에 대해 그는 "공소시효는 비록 만료됐지만 반 인륜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게 국제적 관례"라며 처벌을 요구했다. 이어 그는 "이는 개인의 원한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독재를 제도화한 장치인 고문이 사라지고 인권,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관련자들을 응징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의문사 진상규명위의 활동에 대해 최 씨는 "남은 기간 동안 끝까지 완전한 진실 규명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94년 도미한 최종선 씨는 현재 버지니아주에서 골프장 티칭 프로와 함께 아메리카 트러스트 모게지 회사에서 융자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형의 명예가 회복된 후 귀국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그는 "살인자의 주구들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나라에 무슨 도덕과 정의가 있느냐"며 "박정희 기념관이 지상에 세워진다면 불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