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핸드폰 안녕한가요?"

핸드폰을 또 다른 '피붙이'로 생각하셨던 아버지

등록 2001.12.17 09:34수정 2001.12.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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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야, 이놈의 손 전화가 또 안 들린디 으뜩하믄 된다냐?"
"아버지도 참, 안방은 잘 안 터지니까 마루께 할머니 사진틀 있는데 올려놓으세요."

요즘 들어 하루에 서너 번 씩 아버지에게 핸드폰 수리공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젊은이들만 들고 다닌 줄로만 알았던 핸드폰을 칠십이 가까워서야 손에 쥐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신기할 수밖에.

덕분에 사장골 사시는 작은아버지가 염소에게 안짱다리를 들이받치고는 홧김에 그날 저녁으로 쥔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을 보신하고야 말았다는 얘기며, 광대리 사시는 고모부님이 술에 잔뜩 취해 경운기를 몰다가 경운기는 방죽에 처박히고 물찬 논바닥에 코쟁이 인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짱했던 고모부님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매정하리만큼 틀에 박힌 안부 인사만 묻고 툭하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난데없이 생긴 핸드폰을 다루려다 답답증에 복장터지는 아버지와, "낫 놓고 이것이 'ㄱ' 자요"라고 가르치는 꼴이 된 아들이 전에 없었던 부자의 정을 새록새록 만들어가고 있음을 누가 알리요.

목포에서 뱃길로 두어 시간이나 떨어진 섬에 사는 아버지가 모처럼 기흥에 있는 딸집에 들르셨는데 나보다도 몇 곱절 효심이 깊은 동생이 아버지께 핸드폰을 하나 사드렸단다. 이유인즉 아버지께서 시금치 농사를 짓느라 들녘에 나와 계신 시간이 많았고, 어쩌다 날이 궂어 한가한 날이면 이 동네 저 동네 따뜻한 온돌방을 찾아다니면서 민화투 놀이에 자꾸만 집을 비우시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 째 폐암 투병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전화통을 붙들고 사는 동생인지라 골백번도 답답하고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못난 오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동생이나마 알아서 신경을 써주니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핸드폰이 생긴 아버지께서는 며칠 째 '핸드폰 시험 중'이란 고정 멘트를 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의 전화를 걸어왔다. 피식피식 속 웃음이 터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도 이렇게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진작 사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그러던 중 엊그제 급기야 아버지의 핸드폰 때문에 된통 홍역을 치르는 일이 발생하였다.
"아야, 느 아버지 핸드폰 잃어버렸다고 난리부르스다야 으짜믄 좋겠냐?"

사장골에 사시는 작은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저녁 어스름까지 시금치 밭일을 하시다가 집에 와보니 핸드폰이 그만 어디로 빠져 버렸다는 낙심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가 땅에 꺼질 듯 무거웠다.

"아버지,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이라도 자전거 타고 아버지가 낮에 계셨던 자리를 한번 돌아보세요. 제가 지금부터 핸드폰으로 전화벨 계속 울릴 테니 얼른 둘러보세요."

자동 연결된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를 계속 누르면서 찬바람에 눈을 빨갛게 뜨고 저녁 들녘을 헤매실 아버지 생각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여보세요? 애비냐? 전화 찾았다"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간절히 기다렸다.

가슴 졸이는 마음이 한 시간 반쯤이나 지나고 있을 때서야 핸드폰이 딸깍하며 터졌다. 아버지의 음성이 씽씽거리며 우는 바람소리에 묻혀 가뭇하게 들려왔다.

"애비냐? 응 나다. 이놈의 전화 끝끝내 못 찾는 줄 알았다야. 혹시나 해서 시금치 밭까지 왔는디 글쎄 거기서 이놈이 삐리리 울고 있네 그랴. 에그 불쌍한 놈 같으느니라구."

순간 목이 메어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들녘에 몰아치는 해풍 한 가운데 서 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아프게 아른거렸다. 아버지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핸드폰을 선물한 딸의 마음을 잃어버리기 싫었고, 그 핸드폰을 단지 기계로 여기지 않고 자식들의 목소리로 인해 숨을 쉬는 어린 피붙이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 한 컵 마시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손전화를 밤이고 낮이고 신주단지 모시듯 하드니만 으짠다고 잃어버렸는가 모르겠다. 아까는 어찌나 진땀이 흐르던지 죽는 줄 알았다야. 그 동안 친구들 있는디서 느들 전화 받고 얼마나 목에 힘을 주고 뻐기셨는지 아냐? 그랑께 힘들드라도 당분간은 아버지께 자주 전화 드려라잉?"

아! 아버지로부터의 전화가 단지 '핸드폰 시험 중'만은 아니었구나. 아버지는 들녘에서도 친구분 안방에서도 항상 자식들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계셨고 '핸드폰 시험 중'을 가장해서 자식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불효막심한 마음 때문에 속울음을 한참동안이나 울어야만 하였다.

그 뒤부터 우리 가족은 수시로 핸드폰 안녕(?)을 가장한 아버지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으레 안부만 묻고 딸랑 끊어버리는 통화가 아니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오래오래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아야, 요금 많이 나온다 빨리 끊어라이!"하시는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핸드폰이 효자노릇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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