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름다워서 더욱 서러웠던 순간

눈내린 어느날 풍경

등록 2001.12.20 23:57수정 2001.12.2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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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부부의 눈오는 날 ⓒ 전고필

노란 비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자주 뒤를 돌아보며 말씀을 하십니다.

차 안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제 눈에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어줄 그 누구도 보이지 않은데 말입니다.


손수레 뒤에는 눈을 맞으면 안될 무언가가 우산에 가리워져 흘깃 보일 뿐인데
설마 그 짐에 무어라 말하실 리는 없을 터이고,

하여튼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신호등은 파란눈을 뜨고 시린 손을 움껴 쥐고 한발짝 한발짝 할아버지가 건너 오십니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수레에 함께 따라오는 짐의 실체를 만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산 아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아!
우산 아래에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숨이 막혀 왔습니다.
푸성귀며 무엇인가를 내어다가 파시고 돌아오는 그 고단한 어깨 위로
흠뻑 내리는 눈에 할아버지가 택하신 방법이 할머니를 태우셔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한데 갑자기 저 벽면에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꼬마 아이들의 "엄마 아빠 화이팅!"이라는 문구.

눈보라 속의 할아버지와 우산 속 할머니와 고사리 손으로 그리고 쓴 그 글귀에
눈물을 참아내기에는 제가 너무 여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두 분의 따스한 온정이 금방 방안을 뜨겁게 달구셨길 바라면서
제 신호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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