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물겨운 TV 가족드라마가 무섭다

MBC 창사특집극 <소풍>을 보며 떠올린 생각들

등록 2001.12.28 23:33수정 2001.12.31 21:52
0
원고료로 응원
0

이 글은 드라마 감상문이 아니다.

1

마늘을 찧는다. 알이 굵은 마늘은 절구통 속에서 나무로 된 공이의 공격을 피하느라 부산하다. 가끔 성질 급한 놈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 놈들을 일일이 체포해 다시 절구 속으로 쳐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다행히도 별로 머리를 쓰는 종류의 일은 아니라 텔레비전 보기 등의 간단한 다른 일과 함께 할 수는 있다. 가끔은 함께 해야 더 나을 때도 있고. 쿵쿵. 적당히 힘을 줘서 마늘을 찧으며, 적당히 신경써서 채널을 골라잡는 것이다.

2

왜 방송사들의 창사 특집극(꼭 창사 특집극이 아니더라도 특집극이라 이름 붙은 특별 편성극)들은 비슷비슷한 것일까. 그것들은 거의 항상 저녁을 물리고 가족들이 대충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운 시간에 방송되며, 또 거의 항상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거의 항상 그 가족들은 무언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최근의 단골 메뉴는 치매나 반신불수의 노인이다), 그 문제를 헌신적인 맏이(대부분이 딸이다)가 모두 끌어안고 다른 형제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각자 자기 일에만 열심이다. 또 일쑤 배다른 형제들로 구성된 그들은 서로 묵은 원망을 가지고 있기 쉽다.

그 맏이의 헌신적인 생활로 인해 그의 가정은 거의 파탄 직전이다. 특히나 그런 문제들은 어느날 한꺼번에 닥쳐온다. 맏이 그 자신도 중한 병, 흔히 암에 걸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그 계기로 희생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억울해하며 형제들에게 부모를 모시라는 선언을 한 후 무심했던 남편과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형제들은 맏이의 병에 죄책감을 가지다가 곧 현실적으로 돌아와 부모의 거취문제로 마찰을 일으키고,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혐오스러움을 표한다(내가 이기적인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영문을 모르고 맏이를 원망하던 부모는(날 봉양하기 싫어지니 이젠 짐짝 취급이구나!) 뒤늦게 맏이의 병을 알고 회한의 눈물을 짓는다. 맏이의 병으로 깨질 뻔한 그의 가족은 다시 화목을 되찾고(엄마에게 죽을 듯이 달려들며 독설을 퍼붓던 딸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빌고, 십중 팔구는 앞치마를 두르고 진수성찬을 차려낸다. 그것도 단시간에!), 형제는 해묵은 원망을 풀고, 맏이는 최초로 맞은 나름의 평온한 시간 안에서 최후를 맞는다.

왠일인지 이들 드라마는 모두 이런 구성을 하고 있다. 난 어쩐지 무서워진다.

3

이들 드라마는 대부분이 눈물겨운 장면들의 연속이다. 치매나 반신불수의 부모는 수월한 상대가 아니다. 그녀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부모봉양에 심신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멀어지고, 어느날 들여다 본 거울 속 얼굴은 기름기 하나 없는 까칠하고 주름진 중늙은이의 모습이다.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에 치여 자아를 잃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어머니는 주인공에 동화되어 그녀의 불행에 같이 운다.

숨가쁘게 한꺼번에 잇달아 터지는 악재들. 그건 결코 극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건 그녀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다만 암이나, 분가하겠다는 딸의 선언보다 수위가 조금 낮은 것뿐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주인공을 보며 눈물흘린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운다. 내 인생은 없었다는 억울함, 지나간 젊음, 사랑하지만 힘겨운 늙고 병든 부모. 어머니는 그녀와 자신의 이런 상황에 운다. "엄마, 차라리 우리 같이 죽을까?" 어찌 저 말에 눈물흘리지 않을 수가 있나.

남편은 뒤늦게 후회한다. 친구와 나란히 앉은 바에서 언젠가 보상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살 만한 지금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린다. 이것도 눈물겹다.

둘째 어머니(아버지의 첩)는 자신의 지난 날과 맏이에게 요구한 경제적 권리를 후회하며 자책한다. 보통, 자신의 어머니를 부정하던 그녀의 자녀도 이쯤에서 그녀와 화해한다. 이 과정 역시 눈물을 부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클라이막스는 주인공이 죽는 장면. 화해한 대가족 속에서 그녀는 안심하고 눈을 감는다. 거기서 끝난다. 극은 거기서 끝이다.

4

마늘 때문인지, 드라마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슥슥 문지르며 생각한다. 왜 모든 희생은 맏이, 특히나 여자에게 맡겨지는가. 맏딸이 아니더라도 큰며느리가 모든 부담을 끌어안는 게 보통의 극적 구도이니 만큼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남편은 그토록 무심한가. 마음으로야 미안하고 안쓰럽게 생각하겠지만, 왜 힘들지, 수고가 많아 등등의 말 한마디나 병든 부모에게 말붙이는 등의 작은 행동 하나 하지 않다가 아내가 중병에 걸리고 난 후에야 후회를 하는 것일까. 시간이 없고 살기 힘들어서? 그래, 그렇다고 치자.

무서워진다. 이들 드라마가 무서운 이유는 가족이 얼마나 큰 짐이 될 수도 있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흔히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 집과 가족이란 것이 실제로 우리를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게 만드는지 이들 드라마는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늙은 부모, 서먹한 형제 친척 관계, 자꾸만 멀어지는 남편, 부모의 손을 빠져나가려는 자식들. 패닉이다. 스위트 홈은 이런 불안한 요소들을 잔뜩 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배 모양이다.

이 불안한 가족을 겨우 이끌던 '엄마'는 어느 순간 무너지는 자신과 가족을 본다. 더 이상 어떻게 손쓸 수 없다. 그 가족을 가까스로 꿰어맞추는 건 '엄마' 최후의 희생이다. '엄마의 죽음'. 우리 엄마들은 그걸 보면서 운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죽음. 이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족은 죽음으로도 해방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또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 그녀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에 봉사한다(혹은 해야 한다?)...

특집 드라마가 수년 동안 똑같은 포맷을 유지하는 걸 보며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전히 우리는 '엄마'에게 붙어 그녀의 피를 빠는 가족이란 기생충의 일부이다. 이건 사실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엄마가 계속 일방적인 봉사만 해야 하는 것일까? 계속 피를 빨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게 눈물 흘려 정당화시킬 일일까?

드라마가 무섭다. 똑같은 포맷의 감동적인 특집극을 써내는 작가들이 무섭다. 가족이 무섭다. 그런 특집극이 여전히 먹히는, 굳건히 변하지않는 가족이 무섭다.

5

마늘을 긁어담으며 생각한다. 다음 특집극을 보면서도 난 똑같은 대목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것인가.

6

눈물흘리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다. 마늘 때문이든 드라마 때문이든. 눈은 붓고 뺨은 눈물에 불어 쓸데없이 달아오른다.

마늘과 함께 김치양념에 들어갈 생강은 다행히 마늘보다는 향기롭다. 엄마가 절인 배추를 씻어 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은 김장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