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들의 세밑 '한국어 잔치'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이국인들

등록 2001.12.31 00:56수정 2002.01.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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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에서 비로소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사랑은 돈, 나이, 건강을 떠나서도 할 수 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정규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로서는, 그것도 대중 앞에서 하는 이야기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말들이다.

부천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려 이국 땅에서 겪는 이주노동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인종을 떠나 따뜻한 인간애를 다지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이 주최한 `첫회 외국인노동자 한국어말하기 대회`가 열린 30일 오후 3시 부천근로자종합복지관(원미구 중동)에는 140여 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참석해 이번 대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2일 예심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 13명은 각자의 내로라 하는 한국어 말하기 실력을 뽐내며 모처럼 가슴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말하기 주제도 다양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 여자 친구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개성 있는 주제와 말하기 실력으로 관중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또 일부 참가자들은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으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한국인 선생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참석한 외국인노동자들은 대부분 한국어가 어렵다는 데 공감했으며, 일부 참석자들은 언어를 익힌 덕분에 의사에게 어디가 아픈지 설명할 수 있게 됐을 때 가장 기뻤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에서 온 니봉 씨는 "내 고향 산둥성은 경치가 좋으며 사람들도 매우 친절해 유명한 피서지와 공원, 해산물로 유명하다"며 고향을 소개하고 "이번에 1등을 하게 되면 여러분 모두 산둥성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해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베르 씨는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게 된다는 방글라데시의 사랑이야기 `깨어진 달빛`을 소개했고, 같은 나라에서 온 수림 씨는 병원에서 알게 된 서른 살의 한국인 여자친구가 무려 스물살이나 나이가 많은, 휠체어를 탄 장애의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게 된 과정을 지켜보고 "사랑은 돈, 나이, 건강을 떠나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더욱이 이날 우수상을 받은 수림 씨는 한국에 온 지 6개월만에 몸을 다쳐 목발을 짚은 채로 대회에 참가해 관중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날 대상의 영광은 미얀마에서 온 민민땡(24) 씨에게 돌아갔다. `한국생활과 사랑하는 어머니`라는 주제를 차분하게 말한 그는 수준 높은 한국어 실력과 함께 이국 땅에서 비로소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부천에 거주하는 친구를 따라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는 그는 "고양시에 거주하지만 부천에 거주하는 미얀마 친구들이 도와줘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며 "상을 받게 된 기쁨을 친구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민민땡 씨는 결과 발표 전부터도 미얀마 출신 동료 20여 명이 `대상 후보`로 지목할 정도로 수준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청년이다.

한편 최우수상을 수상한 토야(9)에게도 시선이 집중됐다. 몽골에서 온 토야는 아홉 살 밖에 안되는 나이지만 당차고 낭랑한 어조로 `내 친구 경수`를 이야기해 관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열린 회식 자리에서도 토야는 시종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는 등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꼬마`로 통한다.

`이날 심사를 맡은 6명의 위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외국인노동자들의 한국어 말하기 수준이 월등해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백선기 부천시민연합 대표는 "이국 땅에서 언어를 익히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지난번 외국에 갔을 때 경험한 바 있다"고 말하며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최은민 의장도 "근무하고 있는 병원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 환자들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며 "이런 행사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 외로움을 감내하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고향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관계자는 "고국을 떠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서로의 우애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첫회에 그치지 않고 매년 실시해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앨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미 빛 청사진을 품에 안고 한국 땅을 찾은 외국인노동자들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요즘, 외국인노동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없애고 그들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 외국인 노동자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좋은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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