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국 한 그릇

아이들은 떡 국 한 그릇이 밥상에 올라갔을 때의 호사를 알기나 알까

등록 2002.01.01 12:12수정 2002.01.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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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는 떡국 한 그릇이 놓였다.
배추김치 한가지도 올랐다.
어머니 가락지가 떡국이 되었고, 떡국 속의 고기 몇 점이 되었다.
새 먹이 한다며 동네 시장에서 어머니가 집어온 배추 시래기가 밥상 위의 물김치가 되어 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바로 아래 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고, 막내는 이제 네 살이라 어머니의 치마 끝을 잡고 살았다. 검버섯이 얼굴에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에 쓸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내 국그릇에 들어 있는 떡을 세듯이 아끼며 먹었다.

“ 엄마, 이 떡국 먹어야 나이를 먹나요?”
하고 나는 먹다 말고 물었다.
“ 그럼, 그럼. 많이 먹거라.”

많이 먹을 떡도 없었다. 듬북 퍼주시기는 했지만, 배고픈 내게는 금새 바닥이었다.
“ 엄마, 떡 국 더 먹으면 나이도 더 먹고 힘도 세지나요?”

어머니는 슬며시 웃으며 당신의 그릇에서 떡을 덜어서 내 그릇에 옮겨 담으셨다. 누이의 그릇도 바닥이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초롱했다. 나는 내 그릇에서 떡 두어 점을 누이의 그릇에 담았다.

“옛다, 나는 다 먹었다. ”
아버지는 반쯤 드시다 남은 그릇을 우리에게 밀어놓으셨다. 아버지가 남긴 떡국을 마저 먹어서야 나는 배가 불렀다. 아버지 배는 부른 줄 알았다. 아버지는 다른 데서 뭔가 잡숫고 배가 부른 줄 알았다.


이제 아버지는 가시고, 어머니도 가셨다. 부모님의 눈물로 끓였을 떡국을 이제 다시 먹어 볼 수 없다. 이제 내 아이들에게 아내는 떡국을 끓여 준다. 아이들은 맛없이 먹고 남기기도 한다.

떡국은 눈물로 끓여야 참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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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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