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제 역할해야 공의로운 사회"

[인터뷰] 고효주 여수시의회 초대의원

등록 2002.01.02 12:00수정 2002.01.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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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12월 28일, 여수시의회는 전국 최초로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대한 행정사무조사특위를 구성해 여수시가 13개 언론사 간부와 출입기자들에게 8700만 원의 거액 촌지를 건넨 사실을 밝혀 언론계가 휘청거렸다. 당시 특위를 주도한 고효주(53) 전 시의원으로부터 사건의 전모를 들어봤다.

- 최근 호남매일의 ‘촌지 안받기 운동'은 침체된 광주전남지역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다. 어떻게 보는가.
"10년전 12월 28일은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여수에서 언론인 거액 촌지사건을 여수시의회 초대 시의원 신분으로 세상에 알리면서 권언유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강산이 바뀐 지금 만시지탄의 한이 있지만 호남매일의 촌지거부운동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용기있는 쾌거라고 평가하고 싶다."

- 91년도만 하더라도 촌지는 언론인들 사이에 거의 무감각적으로 받아들였던 관행이였는데 어떤 계기로 문제를 삼게 되었나.
"언론이 바로서야 지방자치도 같이 발전한다고 평소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계도용신문, 홍보활동비, 특집수수료 등으로 집행부가 돈으로 언론을 옭아매 의회를 통제하는 새로운 통제방법으로 언론을 길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인식이 결국 전국 최초로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대한 행정사무조사특위를 구성하게 돼 그 베일이 벗겨진 것이다."

- MBC, KBS, 연합통신, 광주일보 등 13개 언론사 간부 및 기자 30여 명에게 66차례에 걸쳐 8000여만원의 촌지가 건네진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자료는 어떻게 입수하게 됐는가.
"여수시 경우 언론홍보비가 연간 1억 원, 계도지구입비가 1억 원이나 될 정도로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흘러갔다. 91년 전국 최초로 여수시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대한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작업에 들어갔으나 문화공보실이 정기감사를 거부했다. 지금은 홍보전산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 문화공보실은 '청와대가 와도 기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며 자료제출을 결사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회계과에서 장부원장을 입수해 모든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 촌지폭로 사건 당시 가장 인상깊은 일을 기억한다면.
"빛고을 신문과 매스컴 신문이 가진 자와 권력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 특히 연합통신과 매스컴신문간의 민형사상의 법정 공방이 벌어져 참고인 및 증인으로 여러번 법정에 서면서 비통하고 울분을 참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특종보도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만평은 촌철살인이였다."

- 박재동 만평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전광판같은 광고판 앞면에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뒤로는 받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때 만평의 위대함을 알았다."

- 행정사무조사특위 결과 32명의 촌지수수 언론인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를 차지한 언론인은 누구인가.
"당시 양도진 광주일보 여수주재기자로 기억된다. 홍보활동비 1683만 원, 보도사례비 500만 원 등 모두 2183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고 특히 발행여부조차 확인하기 힘든 일간공업신문의 설동회 기자는 특집보도료를 6차례에 걸쳐 1200만 원을 사례비 명목으로 건네받아 충격을 줬다."


-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의 치부를드러내는 일은 지금도 어려운 일인데 폭로이후 신변상의 영향이나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가.
"1차적으로 언론이 개인사업을 공격했고 동료의원들은 나와 서완석 의원을 제명시키고자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전교조, 여수YMCA와 같은 시민단체의 강력한 저지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4개월동안이나 의회가 열리지 못하는 파행을 겪었고 이 사건을 보도한 광주의 빛고을신문과 매스컴신문은 폐간되고 말았다. 그밖에도 중앙 언론인 상당수가 사직하거나 사퇴를 했고 김종필 총재가 부산에서 기자들에게 촌지를 줬다가 다시 되돌려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언론 촌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사회적으로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지자체가 불법이면서도 관행으로 지급해왔던 ‘특집활동비’, ‘홍보활동비’, ‘보도사례비’ 등의 예산과목이 없어지는 계기가 됐고 계도용 신문 예산 거부운동의 단초를 마련했다. 시와 주재기자단, 동료의원들로부터 지금까지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촌지 관행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어떤 차이를 느끼는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방법이 더 지능화되고 교묘해진 것 같다. 그러나 젊은 언론인들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언론 새로태어나기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사회개혁도 되고 공의로운 사회가 된다. 더불어 건전한 지방자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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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창간 첫 잉걸기사를 작성한 사람으로서 한없는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호남매일 정치부 국회출입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저는 광주전남지역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비평과 자치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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