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해맞이눈꽃축제' 24시간의 기록

등록 2002.01.02 12:23수정 2002.01.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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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440m의 소백산 비로봉에 오르는 사람들

매년 연말이 되면 이곳 영주에서는 지역 문화인들이 꾸미는 작은 해맞이 행사가 열립니다. 이들 문화인들은 모두가 소백산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들처럼 그 유명한 정동진이나 경포대, 포항 호미곶까지 갈 것 없이 우리 지역의 영산인 소백산에 올라 한 해를 마무리 하고 또 다른 희망찬 새해를 맞기 위해 무척 분주해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백산 해맞이 눈꽃축제'가 준비됐고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새해 소망을 기원했지만 아쉽게도 구름에 가린 새해 첫 해는 끝내 보지 못해 못내 아쉬운 행사였습니다.

이미 2001년 마지막날인 31일 언론보도를 통해 올해 경북 북부 지역에는 눈이 내려 새해 첫 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행여나 하는 설레임으로 하나둘씩 1440m 높이의 비로봉에 힘겹게 올랐습니다.

아마도 소백산이 지역의 영산이고 자랑스러움 그 자체였기 때문에 새날에 대한 새소망도 이곳에서 빌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선발대로 뽑혀 미리간 소백산 달밭골

2001년 12월 31일 오전11시, 아직 신사(辛巳)년입니다. 미리 준비한 음식과 준비물을 꼼꼼히 챙긴 후,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영주문화연구회 이형섭 사무국장, 박철서 회원과 함께 선발대 자격으로 달밭골에 올랐습니다.

소백산 비로사 가는 길로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몇 채의 민박집이 산 아래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달밭골 사람들은 몇 년째 행사를 준비해온 터라 우리 회원들과도 정이 통합니다.


소백민박집 박노인(86)은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행사를 의뢰하게 되어 송구스런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동안의 정때문에 다른 집에 부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 노인은 많은 손님들을 맞기에 힘에 부쳐 풍기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 내외를 불러온 모양입니다.

"어르신, 할머니를 잃어서 무척 서운하시겠습니다"하고 말씀을 건넸더니 "할멈이 일하기 싫으니까 먼저 가버렸지 뭐." 이렇게 퉁명스럽게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박노인은 지난 번 눈이 올 때 날이 추워진다고 걱정하면서 할머니의 무덤에 비닐을 덮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경상도의 바깥노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은 모두 이런가 봅니다.


지난번 내린 눈은 이미 많이 녹았고,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아쉬운 대로 분무기를 설치해 나무 위에 물을 뿌리고 눈꽃도 만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함박눈이 펑펑 내릴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입니다.

힘을 모아 만든 행사장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영주문화연구회(회장 배용호)는 영주 지역에서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순수 민간단체입니다. 때문에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항상 예산에 쪼들리고 모두가 직장을 갖고 있는 까닭에 힘을 모으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날 제 2진으로 오후 3시쯤 배용호 회장, 김덕우 편집국장, 조재현 문화사업국장, 전규일 씨, 이재란 씨, 김대천 씨, 정용환 씨, 김신중 씨, 나진훈 씨, 강대한 씨 등의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모두가 모여 플래카드를 걸고 솟대를 세우고, 천막을 치고 연을 매달고, 풍선을 불어서 걸기도 했습니다.

등산객들의 새 소망과 새 느낌을 담을 수 있는 대형 현수막도 설치하면서 찬 바람만 불던 달밭골이 서서히 따뜻한 마음을 담는 축제 장소로 탈바꿈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행사는 예전과는 다르게 영주시청 공무원이 운영하는 관광안내 사이트인 아름다운 영주(www.iyeongju.pe.kr)를 보고 서울에서 사는 박미희(27) 씨, 박은숙(27) 씨 등은 우리 행사준비팀을 찾아와 힘을 북돋워 주었다.

소백산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등산객들에게 막걸리와 어묵을 제공하기 위하여 파와 무를 다듬고 어묵도 함께 썰었습니다. 큰 식깡(알루미늄으로 된 큰 드럼통)에 세 통이나 되는 양이어서 가마솥에 세 번이나 불을 지펴야만 했습니다.

세벽 4시에 오른 비로봉

한창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반가운 두 사람이 우리 행사준비팀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은 새해 소망 휘호를 써 주기 위해 올라온 서예가 장호중 씨였고, 또 한 사람은 비로봉 정상에서 가질 신년음악회의 축가를 부르기 위해 올라온 테너 유영재 씨였습니다.

자정 가까이 되자 부슬부슬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드럼통에다 장작을 넣고 모닥불을 피우자 사람들은 점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두 아가씨들은 케익과 샴페인까지 준비해 와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경건한 의식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2002년, 임오(壬午)년 1월 1일이 밝았습니다. 새벽4시. 모두가 지친 몸을 이끌고 비로봉에 오를 준비를 하느라 매우 분주합니다.
달빛이 우리들을 비추어서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눈바람 때문에 몹시 추웠습니다.

비로봉에 오르기 전 위치해 있는 샘터에는 영주지역 산악회 회원들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따뜻한 인삼차를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지친 우리 일행에게 그 인삼차는 잠시라도 추위를 잊게 해주는 감로수 그 자체였습니다.

3시간이 걸려 오른 비로봉 정상에서 새해 소망 리본을 달고 월드컵 성공 기원제를 올렸습니다. 어둠을 뚫고 힘차게 떠 오르리라고 잔뜩 기대했던 새해 첫 해는 보이지 않고 차가운 눈보라만 몰아쳤습니다.

이 겨울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잠시라도 서 있으면 살이 어는 듯한 고통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위가 맹위를 떨친답니다.

아쉽게 해는 보지 못했지만 일출 예정 시각에 맞춰 새해를 선포하고 테너 유영재 씨가 축가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마이크도 얼고 입도 얼어서 제대로 울리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올해 소백산 비로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비록 새해 첫 해는 보지 못했지만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명산 소백산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넉넉한 품으로 사람들을 반기는 소백산. 산 앞에서 여전히 내 자신이 왜소해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예전과 다름없이 성대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 소박한 행사를 준비했고 또 모두가 하나씩의 소망을 빌고 내려온 2002년 소백산 해맞이 눈꽃축제. 막걸리와 어묵을 대접하는 수고로움이 더욱 힘겹더라도 내년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영주의 자랑거리인 소백산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소백산해맞이눈꽃축제 

2002. 1. 1. 07:00∼10:30 (비로봉) 
(일출예정시각 : 07:35) 

소백산은 우리의 영산입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산에 올라 
아침을 설계하기도, 소망을 빌기도 하였습니다. 
소백의 품속에서 가족, 친구, 연인 사랑을 확인하기도, 
소백 마당에서 새 세기 문화 융성을 꿈꾸기도 합니다. 

소백 그 정상에서 일출의 장관과 함께 새해를! 

첫째 마당(혼) - 소백 오르기, 소백 감싸기 
둘째 마당(소망) - 소망 눈꽃나무, 2,002인 축원 달기 
셋째 마당(기원) - 해맞이 월드컵 기원제, 새 아침 찍기 
넷째 마당(아침) - 울림, 빛, 소리 
다섯째 마당(말씀) - 새해 선포, 환영 풍선, 화합 비둘기 
여섯째 마당(만남) - 소망 사인, 새해 지신밟기, 새해 인사 

주최 : 사단법인영주문화연구회 
후원 : 영주시 안동MBC KBS안동방송국

덧붙이는 글 소백산해맞이눈꽃축제 

2002. 1. 1. 07:00∼10:30 (비로봉) 
(일출예정시각 : 07:35) 

소백산은 우리의 영산입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산에 올라 
아침을 설계하기도, 소망을 빌기도 하였습니다. 
소백의 품속에서 가족, 친구, 연인 사랑을 확인하기도, 
소백 마당에서 새 세기 문화 융성을 꿈꾸기도 합니다. 

소백 그 정상에서 일출의 장관과 함께 새해를! 

첫째 마당(혼) - 소백 오르기, 소백 감싸기 
둘째 마당(소망) - 소망 눈꽃나무, 2,002인 축원 달기 
셋째 마당(기원) - 해맞이 월드컵 기원제, 새 아침 찍기 
넷째 마당(아침) - 울림, 빛, 소리 
다섯째 마당(말씀) - 새해 선포, 환영 풍선, 화합 비둘기 
여섯째 마당(만남) - 소망 사인, 새해 지신밟기, 새해 인사 

주최 : 사단법인영주문화연구회 
후원 : 영주시 안동MBC KBS안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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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주고등학교, 선영여고 교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경작가회의, 영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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