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키고 싶은 계획 '착하게 살자'

등록 2002.01.04 00:41수정 2002.01.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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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뀔 때마다 나는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을 모두 다 이룬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는 내가 연초에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부족했거나, 욕심이 많았거나, 너무 게으른 탓이겠지만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 가지 계획을 세웠고, 그 중의 한 가지가 '착하게 살자'이다. 어찌보면 너무 막연하고 어이없어 보이는 계획이기도 하지만 정초부터 그 계획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니 참으로 지키기 힘든 계획임에는 틀림이 없다.

작년 12월31일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날은 친정식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언니네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1월1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운 탓에 아파트 단지의 길도 꽁꽁 얼어붙었고, 그 여파로 결국 네 살배기 조카가 남편과 바깥에 나갔다가 미끄러져 뒤통수가 찢어지는 바람에 1월1일부터 응급실에서 머리를 꿰매는 사고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골목길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눈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작년 이맘때쯤엔 눈이 내리면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골목에 쌓여있는 눈을 쓸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파트에 살다가 골목이 있는 단독주택에 처음 이사를 온 나는 그것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으며 정겹기까지 했다. 조금 귀찮아도 옷을 챙겨입고 나와서 이웃들과 함께 눈을 쓸어내곤 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단독주택이 허물어지고 빌라, 원룸 등이 들어서면서 동네분위기가 좀 변했다. 빌라나 원룸 같은 건물은 많은 사람이 모여 사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골목의 눈을 치우거나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눈을 치우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눈이 오지 않은 날도 골목은 예전의 깨끗함을 잃어가고 점점 쓰레기가 쌓여갔다. 누구도 그 쓰레기를 치우려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사람들이 나와서 청소를 할 때는 함께 나가서 청소를 하곤 했지만, 애써 내가 먼저 청소를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날도 쌓여 있는 눈을 밟으며 집에 들어가면서 '눈을 좀 쓸어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 골목길을 혼자서 쓸어낼 생각을 하니 춥고, 귀찮은 생각이 앞섰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있다보니 눈을 쓸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며 골목길에 쌓인 눈을 보고서야 첫날부터 계힉을 지키지 못한 것에 후회가 일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아파트에 살 때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정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골목길이 참 정겹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이 골목도 그 정겨움을 잃어가는 듯해서 새해부터 마음이 언짢았다.

혹시 다들 나처럼 누군가 먼저 나와주길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작년엔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마당의 눈을 치우고, 골목길의 눈을 치운 날도 참 많았습니다.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도 동네분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눈을 쓸다 보면 금세 골목이 깨끗해지곤 했지요. 올겨울도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작년엔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마당의 눈을 치우고, 골목길의 눈을 치운 날도 참 많았습니다.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도 동네분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눈을 쓸다 보면 금세 골목이 깨끗해지곤 했지요. 올겨울도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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