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하세요. 제 차는 저녁 8시에 들어옵니다."
CF는 그저 CF일 뿐이었다.
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문정동, 가락동 일대 골목길을 둘러보았다. CF 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람이 없을까?"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거주자 우선 주차제의 시행으로 골목길 어디든 주차 구획선이 그어져 있었다.
비어 있는 주차 구획선에는 어김없이 주차금지라고 쓰여진 표지와 의자, 옷걸이 ,생활정보지함, 물통, 커다란 주차금지 입간판, 각종 폐가구, 쓰레기 봉투 등이 자리를 잡고 이방인의 주차를 막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움직이기도 어려운 콘크리트 덩어리와 돌을 갖다 놓기도 했다. 각박함 그 자체이다. 주차금지 안내판은 그나마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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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이동의 한 소형빌라에 '주차금지'라는 글과 함께 '주차시 10분에 3000원'이라는 엄포성 글이 안내표지판에 부착되어 있다. ⓒ 최성근 |
한 집은 아예 건물 앞에 빨간색 스프레이를 이용, '주차금지, 주차시 펑크'라는 글을 큰 글씨로 써놓기도 했다. 또 방이동의 한 빌라는 주차 금지라고 써놓고 주차하면 10분에 3000원을 받겠다는 '엄포성' 안내 표시를 건물 외부 곳곳에 붙여 놓았다. 1시간이면 1만8천 원을 내야하는 셈이다.
돈을 내고 주차하는 거주자 우선주차구획에 연락처 한 장 남기지 않고 주차하는 얌체족들이 이 같은 야박한 주차인심을 만들어 낸 것인도 모른다.
남의 집 앞에 주차를 하면서 연락처도 남기지 않아 주인이 승용차 앞 유리 위에 글을 쓴 메모지를 윈도우 브러시에 끼워 남긴 곳도 있다. "주차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없게 하자"는 경고성 글이었다.
군데군데 거주자 우선주차제에 대한 송파구청의 안내표지판이 지나치다고 여길 정도로 많이 서 있고 위반시 견인조치된다는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신고처의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지만 신고를 막기 위해서인지, 일부러 전화번호를 지운 흔적이 역력한 표지판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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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 운전자들의 주차로 집 앞에 주차를 할 수 없게되자 집 주인이 승용차 앞 유리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경고의 메모를 남겼다. ⓒ 최성근 |
거주자 우선 주차제 위반차량 견인업무를 맡고 있는 송파구청 송파개발공사의 한 관계자는 "하루 1백여 건 이상의 신고가 들어오지만 인력과 장비가 모자라 다 견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불법주차 차량에 대한 견인 지연에 따른 주민들의 항의도 빗발친다.
주차문제로 인한 주민들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웃 간의 불화와 불신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문정동에 사는 한 주민은 18개월 동안 6번 펑크가 나고 백미러도 두번 파손됐다고 항변했다.
거주자 우선 주차제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도심 골목길에서는 주차 전쟁 속에 이방인의 주차를 막기 위한 집주인들의 '방어망 구축'은 계속되고 주민간의 신고로 인한 차량들의 견인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CF같은 세상은 언제나 올지, 이웃간의 훈훈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야 할 우리의 골목길이 더욱 삭막하고 춥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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