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머리를 했는데 그냥 가도 되나요?

소록도 주민 이·미용봉사에 참여하면서

등록 2002.01.12 03:44수정 2002.04.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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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때아닌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이 일고 날씨가 심상치 않아 "오늘은 소록도 미용봉사 가는데 이 일을 어쩌나!"
그러나 6시쯤 비가 그쳤다.
2002년 1월 7일. 어둠을 뚫고 우리는 그렇게 출발을 했다.


녹동에 도착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배를 타고 들어가 주민후생복지관에서 10시 50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7시부터 와서 기다린 분도 계셨고 소사모(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daum.net/ilovesosamo)에서 미용봉사 온다는 소식을 듣고 회원들이 보고 싶어서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오신 분들도 많았다.

이번에 95명이 컷트와 파마를 했는데 대부분 파마를 하셨다.
소록도 주민들의 머릿결은 유난히 곱고 탄력이 있어서인지 이리저리 어렵게 따뜻한 물을 준비해 머리를 다 감고 마무리 손질이 끝났을때는 주민들 모두가 미인이 되셨다.

17명의 미용봉사자가 6시간 동안 작업을 하면서 전원 점심도 잊은채 물통에 물이 있었지만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의자에 한번 앉아 볼 틈도 없이 그렇게 숨가쁘게 음식만 없는 잔치집 분위기의 시간이 지나갔다.

봉사자 전원이 얼마나 주민들을 한분 한분 따뜻한 사랑으로 대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파마를 끝내신 분들은 "이렇게 예쁜 머리를 했는데 그냥 가도 되나요?"하면서 말을 건넸다. 이 말을 들은 한 봉사자는 "하면요, 추운날씨에 머리하러 여기까지 오신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요"라며 선선하게 대답했다. 그제서야 파마를 마친 분은 기뻐하시면서 난롯가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구북리에 사신 한 주민은 "지난 연말 소사모에서 보낸 카드 받고 1월 7일만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고구마 준다고 집에만 가자고 하시기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들렀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분은 옆방 할머니께 "우리집 손님왔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시면서 준비된 봉지를 건네주며 많이만 가져가라고 하셨다. 소록도 고구마는 왜 이리도 큰지! 남생리에 사신 할머니 한분도 혼자 들기에는 벅찬 큰 호박을 주시기도 했다.

이번에 미용봉사 하면서 느낀것이 있다면 소록도 주민들은 어떤 물질적인 것 보다는 관심과 잔잔한 애정을 몹시 더 그리워 하신 것 같았다.


하기야 이번에 뵈었을때는 구면인 분이 많아 악수할 수 없는 분들도 계셨기에 두팔로 껴안는 인사로 반가움을 표했지만, 멀리 사신분들은 버스로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고 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전하기에는 여러면에서 부족했다고 본다.

녹동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광주로 돌아오는 길은 호남지방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도로가 꽁꽁 얼어 어찌나 미끄러웠던지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 주암댐 못 와서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긴장속에서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아! 그래서 엄동설한 봉사가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소록도에 사신 분들께 오늘은 편지를 쓰고 싶다.

소록도 주민 여러분!
아니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 여러분!
저희가 이렇게 조그마한 사업으로 행사를 하지만 당신들을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리고 낯을 낼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우리모두 똑같은 인간으로 현존하기에 함께 더불어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일 뿐 입니다.

석달 후 4월에 갈때는 작년에 심었던 철쭉꽃이 핀 동산을 볼 수 있겠네요. 아니 5월쯤 활짝 피겠지요. 바닷가 기슭에 소담스럽게 피어있을 진달래꽃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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