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영어와 필요 없는 영어

<미국여행기 5>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하나?

등록 2002.01.12 07:27수정 2002.01.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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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7일부터 미국의 학교들은 겨울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LA근교 토랜스에 있는 'Hamilton Adult School'에 등록했습니다. 다음달 중에 혼자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선 외국인들과 대화하는데 두려움을 없앨 요량으로 오전·오후 각각 3시간씩 영어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자 영어학습 프로그램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다민족 사회 미국에서도 LA는 이민자들의 비율이 아주 높은 도시입니다. 'LA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들과 불법 취업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인구센서스 보고서가 얼마 전에 이곳 언론을 통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영어를 능숙하게 다룰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탁석산 씨가 쓴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책을 보면 '같은 언어의 의미는 동일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사회의 특징적인 성격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언어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적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보다는, 사회를 운영해 가는 데 근본적인 법과 제도와 같은 국가 통제시스템도 작동되기 어렵다는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례로 LA에 있는 한인타운의 경우, 영어를 한마디로 할 줄 몰라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수업하는 모습 ⓒ 최용선
그래서 LA시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adult school'을 여러 곳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등록한 Hamilton Adult School에는 일본, 한국, 중국을 비롯한 멕시코 및 남미 이민자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는 곳입니다.

이 학교의 또 다른 특징은 나이의 구애를 받지 않고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학교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이민자들이다 보니 저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는 동료 가운데에는 환갑을 훌쩍 뛰어넘은 한국 할머니도 있고, 백발의 중국 할머니 모녀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녀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딸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뒤늦게 영어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지요. 올해 26살인 제가 이 반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들 축에 속합니다.

이 학교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면 고등학교 능력시험을 치를 수 있게끔 커리큘럼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는 야학이나 학당과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차이점은 주정부가 직접 운영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언제나 등록할 수 있게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는 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과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미국과 한국이 같아 보였습니다. 두 나라가 영어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교육은 미국에서 쓰는 영어와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필요 없는 영어, 필요한 영어

입학 첫날, 반을 배정받기 위해 시험을 보는데 참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영어와 미국에서 쓰는 영어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를 담당하던 선생님은 제 영어이름 "스펠링을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Y-O-N-G S-U-N, C-H-O-I"라고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YON'까지만 쓰고 도무지 'G'를 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제 입만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발음해보라고 "repeat!"를 외치더군요. 제가 계속 'G'라고 해도 그는 'Z'라고 쓰더군요. 제가 답답해서 펜을 주라고 했더니 담당선생님은 자신 있게 말하더군요.

"한국과 일본학생들은 읽기와 해석능력은 뛰어나지만, 듣기와 말하기가 너무나 빈약하다. 만약 네가 여기서 은행을 가거나 상점에 가는 일이 생기면, 너는 그곳에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는 수없이 한국과 학생들을 만나보면서 한국에서 쓰는 영어와 미국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일본학생들도 한국학생들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까지 필요로 했던 영어는 점수를 높이기 위한 영어였습니다. 영어를 생활에서 쓰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저는 굳이 말하기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국인 '순희' 할머니
이곳에는 순희 할머니처럼 손녀와 이야기를 하기위해, 자녀들의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 최용선

이는 많은 학생들이 저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저는 이곳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저를 검증해줄 수 있는 시험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생활과는 괴리된 영어공부를 해야 됩니다. 이곳 선생님이 말하는 "필요 없는 공부"를 말입니다.

제가 일상에서의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입학을 위해서, 대학에 입학해서는 TOEIC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문제유형을 익히고 출제유형을 분석해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부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싶습니다. 제가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가장 절실한 것이 간단하게라도 저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시할 줄 아는 '용기'거든요. 이런 용기는 혼자 책을 본다고, TOEIC 공부를 아무리 해도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더군요.

각자가 살아 있는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기 위해 동기부여를 해주기보다는, 능력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사용함에 따라 전혀 일상과 동떨어진 '영어성적 향상을 위한 기술'만을 양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TOEIC 공화국 한국의 현주소가 '살아있는 영어'의 필요성을 위함인지, 막연한 '능력검증'의 수단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LA근교 토랜스지역에 있는 'HAMILTON ADULT SCHOOL'
ⓒ 최용선
물론 '진짜 자유주의자(?)'를 자임하는 어떤 가짜 자유주의자 소설가는 영어공부의 동기부여를 "'영어 공용화'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주장을 하시고 있고, 또 이것에 동조하시는 분들도 많던데요. 그들은 단지 영어가 세계의 공통언어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위해서 공용어로 쓰자고 하시지만, 일상 생활에 아무런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모습에는 어째 일제시대의 '전체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능력을 교수임용의 우선 조건"으로 달아놓은 것을 보면, 국내 최고대학을 따라하기 좋아하는 다른 대학들도 이것을 조만간 따라하겠지요. 어쩌면 여기 저기서 미국의 유명대학이 한국에 분교를 세워주기를 갈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세계적인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영어의 일반화가 아닐 것인데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름과 틀림. 제가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현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제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제가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이 '사물' 자체를 보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부족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가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나 가치관이겠지요. 그것은 각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깊이의 차이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차이(다름)이지 틀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은 이것을 구분해서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못본 것인지, 혹은 다르게 본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의견에는 제가 어떻게 답변을 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좋은 하루 되세요.

덧붙이는 글 다름과 틀림. 제가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현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제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제가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이 '사물' 자체를 보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부족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가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나 가치관이겠지요. 그것은 각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깊이의 차이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차이(다름)이지 틀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은 이것을 구분해서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못본 것인지, 혹은 다르게 본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의견에는 제가 어떻게 답변을 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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