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교통사고 끝에 되찾은 '기억'

'밥'보다는 '진실'이 고팠던 한 제자 이야기

등록 2002.02.08 07:18수정 2002.02.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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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창원에서 한 제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졸업한 햇수를 따져보니 정확히 1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도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흐르고도 두 해가 더 지난 것입니다. 그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떤 세월의 광풍에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에 대한 기억들이 상당 부분 훼손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기억 나십니까? 저 밀걸레로 50대 때리신 거 말입니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뭐? 20대가 아니었고?"
"아닙니다. 50대가 맞습니다. 밀걸레가 두 개나 부러졌는데요."
"뭐? 정말?"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님은 매를 안 드시기로 유명했다 아닙니까? 저희들이 결석을 하면 선생님이 대신 운동장을 돌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선생님께 매를 맞은 거란 말입니다. 저, 거기에서도 선생님 생각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 저 깜방 갔다온 것 아시죠?"
"응?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저 거기서도 생각 많이 했습니다. 그러실 분이 아닌데 저만 왜 그렇게 때리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12년 전, 그는 3학년 졸업반 학생으로, 저는 두 번째 담임을 맡은 햇병아리 교사로 서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인 선과 악에 대한 구별 능력이 사뭇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그는 그것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오기나 고집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주어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자신이 해를 가한 상대방의 아픔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작은 손해만을 생각하는 그런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이기적인 행동을 그가 지닌 거친 무기가 아닌 그의 아픈 결핍으로 이해하기까지는 당시 햇병아리 담임이었던 저로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좋은 습성이 있어서 그 한 가닥 희망에 매달려 낫 놓고 기역자를 가르치는 식으로 인간 도리에 관한 기초적인 윤리교육을 그 해 내내 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6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게 됩니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별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부모가 어느 날 큰 다툼 끝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입니다. 그와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병약한 노모와 함께 남겨두고 말입니다. 그의 부친은 아직까지도 소식이 끊긴 상태이고, 초라한 숙박업소를 전전하며 험한 일을 하고 있는 모친에 대한 소식은 몇 해 걸러 한 번씩 풍문을 통해서나 듣고 있는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머니를 만나볼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도 가끔은 어머니가 보고 싶은데 만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제가 어머니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선생님, 제가 그 동안 부모 없이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뜻밖에도 공부였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교과서에 있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집안에는 까막눈인 할머니뿐이어서 아무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상급생이 되어 글자도 못 읽는다고 혼을 낼 뿐,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상하게 글자를 가르쳐준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그런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아무에게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담임을 맡았던 그해, 오토바이 절도로 구속되어 졸업을 불과 2개월을 남겨두고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로 그해였습니다. 그를 구해보려고 탄원서를 들고 검사를 찾아가 눈물로도 호소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러한 담임교사로서의 당연한 노력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 해 형기를 마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올 의사를 저에게 전해왔고 학교에서도 그를 받아들여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깁니다.

"전 정말 몰랐습니다. 전과가 있어서 적어도 10년은 취직을 못할 줄로 지레짐작을 한 거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술집 웨이터 생활만 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작년에 알아보니 제가 졸업한 바로 그해 전과기록은 이미 지워졌더란 말입니다."

그런 기막힌 사연도 사연이었지만 그날 저를 감동시킨 것은 그가 놀랍게도 교통사고를 세 번씩이나 당한 그 뒷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관광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한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수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첫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문득 그것이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에 대한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문제였습니다.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의 냉소와 비웃음은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두 번째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 사고로 그 동안 번 돈을 거의 다 까먹고 말지만 돈에 대한 애착보다는 그 사고로 인해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해서 떳떳한 직업으로 바꾸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는 것이 크나큰 고통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너무도 큰 외로움이 다시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세 번째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세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이상하게 조금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란 말입니다. 정말 진실하고 보람되게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마취에서 깨자마자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만은 제 진실을 이해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란 말입니다."

그날 제자가 저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진실을 저에게 털어놓기 위해 그는 멀리 창원에서 차를 몰고 달려온 것입니다. 선물을 손에 들고 말입니다. 그날 저는 고급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도 대접받았습니다.

그는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지금이라도 방송통신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자신의 의향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나이가 벌써 서른 한 살인데 지금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유쾌한 심정이 되어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넌 이미 성공을 했어. 돈보다도 진실을 선택한다는 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런데 넌 아무래도 하나님이 도우신 것 같구나. 너 말고 세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를 보내고 저는 느닷없이 모천회귀성 본능으로 유명한 연어를 머리를 떠올렸습니다. 그가 저를 찾아온 것도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진실회귀성'이란 것이 있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의 학교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그런 진실을 얼마나 심어주고 있는지 그것이 심히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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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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