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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의 선친이신 지동환(池東煥) 님의 1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1986년 66세라는 너무도 아까우신 연세로 선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신 후 벌써 16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그 사이에 우리 집에는 실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선친께서 설 명절을 이틀 앞두고 작고하신 바람에 삼일장으로 장례를 치르자면 설날이 장례일이었지요. 그래서 사일장으로 초이튿날 장례를 모셨지요. 정초임에도 많은 분들이 장례미사에 참례해주셨고, 스무 명도 넘는 성당 형제들이 상여를 메주셨던 일이 어제 일같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어느덧 상여 풍경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어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온 가족이 덕산 온천으로 목욕을 갔습니다. 내 노모께서 특히 온천 목욕을 좋아하시는 데다가 온천욕이 조금이라도 노인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목욕은 한 달에 세 번 꼴로 매번 덕산 온천으로 갑니다. 방학 때를 제외하곤 새벽에 가곤 하는데, 태안에서 덕산까지 70리 길이라, 목욕을 갔다 와서 아내와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새벽 4시에는 출발을 해야 합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성당에 가서 아버님을 위한 '연미사―위령미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새벽의 목욕은 저녁의 연미사를 잘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내 아이들에게 그것을 강조한 것은 물론이고…. 오늘 저녁에는 삼형제 가족이 모두 내 집에 모이고 일부 사촌들도 와서 제사를 지낼 예정입니다.
나는 선친의 기일이나 명절이나 11월 '위령성월'에 (일 년에 서너 번씩) 매번 연미사를 봉헌할 적마다 내 선친께서 이승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셨음을 스스로 느끼곤 합니다. 세속적인 차원에서는 '실패'라는 단어와 결부될 수도 있을 정도로 내 선친께서는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지만, 그 가난이야말로 '성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난은 물질적인 빈곤이나 궁핍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 없는 상태―마음의 평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세속에서는 실패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저 하늘나라와 연관해서는 참으로 큰 득(得)이요, 성공일 수가 있는 거지요.
내 선친께서는 세속에서의 일시적이고 덧없는 성공보다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성공을 바라고 한 세상을 가난하게, 착하고 정직하게 사셨던 거지요.
선친께서는 당신의 아들에게 물질적인 가난과 함께 정신적인 가난도 고스란히 물려주셨습니다. 내가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인 가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지요.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을 올곧게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에 의해 내 아버님의 영혼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하곤 합니다.
아버님은 아들에게 가난과 신앙을 성공적으로 물려주시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난과 신앙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유지해가면서 일 년에 몇 번씩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곤 하니, 그것 자체로써 내 아버님의 이승에서의 삶은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아버님을 위한 연미사를 드릴 때마다 아버님의 이승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생각하곤 합니다.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 삶이란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진정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절감하곤 합니다. 어쩌면 내 자신이 아버님의 성공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드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내 아버님의 성공 속으로 귀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나는 내 아버님의 성공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성공도 생각하곤 합니다. 나도 내 아버님처럼 진정한 성공을 거두고 싶습니다.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는 하느님 신앙이 내 자식의 삶 안에서도 온전히 잘 유지됨으로써, 내가 죽은 후에 내 자식도 아비의 영혼을 위해 일 년에 몇 번씩 연미사를 봉헌하며 산다면, 나 또한 크게 성공을 거둔 폭이 되리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런 성공을 희망하고 추구합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자식을 여럿 두는 시절이 아닙니다. 자식을 여럿 두던 시절에는 그만큼 성공 가능성도 커지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나는 내 딸아이와 아들녀석을 정말 잘 기르고 싶습니다. 늘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착하고 정직하게 살도록 하고 싶습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내 자식들이 하느님의 심성을 잃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난이 잘 유지되는 참 신앙 안에서, 최소한 죽은 부모의 영혼을 위해 미사 봉헌을 하며 살 줄 아는, 그런 자식들로 기르고 싶은 거지요.
나는 어제 아버님을 위해 미사 봉헌을 하면서 다시 한번 아버님께 크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실로 범상치 않았던 분임을 새삼스럽게 절감하였습니다. 내게 가난과 하느님 신앙을 물려주신 아버님께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청년 시절에 당신 스스로 찾아 나서심으로써 하느님 신앙을 얻으셨던 내 아버님은, 내게는 참으로 존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26편의 동화 작품들을 남겨놓으신 내 아버님이 평생 동안 가슴에 지니고 사셨던 그 동심(童心)의 세계도 내게는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글의 분량이 길어졌으니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내 아버님의 동화 작품을 읽은 사람들도 꽤 많음을 감안하여 다음에는 내 아버님의 동화집과 관련하는 글을 한 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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