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안학교의 '재미 있는' 입학식

<귀농일기> '실상사 작은학교'의 입학 축제

등록 2002.03.04 00:59수정 2002.03.0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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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같은 입학식


2학년이 된 선배 열세 명이 모두 나와서 새내기 후배들을 반기는 축가를 부른다. 손뼉을 치면서 제각각 춤추는 모습이 참 자유롭다. 환한 표정에 구김살 하나 없다.

이번엔 새내기들 차례. 역시 열세 명 전원이 앞으로 나와선다. 4박 5일간의 예비학교를 거친 아이들이라 이미 서로 친해져 있는 분위기다.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중학생이 된 소감과 다짐을 발표할 때마다 학부모나 재학생들의 환호가 떠들썩하다.

난생 처음 무대 위에서 열광하는 관객을 대하는 감동 때문일까? 두 아이 입 모양이 갑자기 삐쭉삐쭉하더니 끝내 울음보를 터뜨린다. 발칙한 관객들은 도리어 와르르르 웃는다. 더 울어야 할지 따라 웃어야 할지 두 아이는 어리벙벙한 표정이 된다.

▲ 아홉 분 선생님들의 소개시간 ⓒ 전희식
이번엔 선생님 소개시간.
전교생 26명에 9명의 선생님. 철학 선생, 명상 선생, 나무 다루기 선생이 소개된다. 독특한 과목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개 될 때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순간이다. 임현재라는 재학생은 이 학교에서 보낸 1년 중에서 제일 즐겁고 보람 있는 것의 첫째가 선생님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작은학교로 가는 길


졸업이니 입학이니 하는 것도 기실 사람이 작위적으로 설정한 구획일 뿐 삶의 여정에 무슨 출발이 있고 무슨 종착이 있겠는가마는 나는 오늘 '실상사 작은학교' 입학식에 다녀왔다. 국내 유일의 중학교과정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는 입학식도 대안적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의례적 행사라기보다 재미있는 축제였다.

엄숙한 질서 대신에 왁자지껄한 일치가 있었다. 어떤 학부모는 집에서 농사지은 것으로 현미떡을 만들어왔다. 아빠들은 웃통을 벗어 놓고 아이들이 살 빈 농가를 고쳤다. 부서진 사립문도 고쳤다. 하수도가 막힌 집이 있어서 곡괭이로 마당을 파내기도 하였다.


학부모들은 두어 시간 연습을 거쳐 GOD의 '길'이라는 노래를 축가로 불렀다. 다들 입만 벙긋거리는 실정이라 카세트의 볼륨소리가 더 컸지만 다들 유쾌해 했다.

여느 입학식과 달리 나를 비롯해 모든 학부모들이 망치와 낫, 호미, 조각 칼, 톱 등의 공구를 챙겨들고 왔다. '자치살림'이라는 교과목 시간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장들이다. 연장을 다룰 수 있음으로 해서 인간의 위대한 진화가 가능했다는 금언을 실천하기 위함인가?

지난 달에는 전학년 학부모가 2박 3일의 학부모 연수를 했다. 오늘은 어느새 엄마들끼리는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한 식구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호기심 반 호의 반으로 한 학부모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를 이곳에 보내기로 작정하면서 마지막까지 제일 걸렸던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대뜸 어린 아이를 떠나 보내는 것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거나 학교 건물이라는 것이 달랑 컨테이너 박스 두 채라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현재의 제도교육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반면에 어떤 아빠는 학부모 연수를 하고서야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고 한다.

대안학교는 과연 교육의 대안인가

▲ 작년 여름 작은학교 학생들의 비오는 날의 체육시간 ⓒ 전희식
사실 대안학교를 거론할 때 은연중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게 있다.

신종 치맛바람이라는 일부의 지적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은폐된 허욕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계해야 할 대목이긴 하지만 분명 나는 몇 번을 검열해도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결론에 변함이 없다.

얼마 전 우리 아이가 배정된 의무교육 해당 중학교에서 안내편지가 왔었다. 예비소집에 대한 안내서였다. 학급 배정을 위한 시험을 치르겠으니 학교에 나와 달라는 안내었다. 성적순으로 학급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또 소집일에 갖추어야 하는 복장에 대한 지침이 여럿 있었다. 머리칼길이. 교복, 신발, 머리색깔 등등...

어제는 그 중학교 앞을 지나오는데 아이들이 교문 밖에서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교문이 닫혀 있었다. 시간이 될 때까지 학교에 못 들어오게 한 모양이다. 조금 있다가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가는데 이미 운동장에는 선생님이 지휘봉을 들고 학생들을 반듯반듯하게 줄을 세우고 있었다. 첫 대면부터 선생과 학생은 사랑과 신뢰 대신에 통제와 지시와 타율관계로 만나고 있었다.

진저리가 났다. 이유도 모른 채 받아야 했던 쪼그려뛰기니 원산폭격이니 하는 숱한 단체기합들.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줄을 그어가며 외웠던 문제집들이 떠올라서였다.

'작은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이 보내온 편지가 다시 생각난다.

'(전략)....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했다. 이 아이들과 잘 살겠노라고, 살아 온 생의 정점에서 이 아이들을 만나겠노라고, 담임 소임을 다시 없을 기회로 여겨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아이들에게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사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엄밀히 따져보면서... (후략)"

아까의 임현재 학생은 이제는 남들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게 되었다고 했다. 1년간 스스로 뭐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일반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뭘 물어 보더냐고 물었더니 시험과 교복과 구타라고 했다.

▲ 전교생과 학부모, 선생님, 후원회원들이 한자리에서 기념촬영 ⓒ 전희식
입학식 후에 학부모들이 따로 모였다. 매달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부모 특강'시간을 배정하기 위해서였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생활과 특기를 소재로 아이들에게 한나절 특강을 하는 과목이다. 어떤 아버지는 낚시를, 어떤 어머니는 종이접기를 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검도, 전통놀이, 인형만들기, 대체의학, 조형미술, 태권무, 요가, 자연생채식, 정보화특강, 생활계획표 작성법, 천연염색, 국선도 등이 나왔다.

더 있는지도 모르지만 두 가정이 이혼한 가정이었다. 따로 사는 엄마 아빠가 각각 참석하여 아이의 입학을 위해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저녁 때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갔던 작은아이가 왜 학교 이름이 '작은학교'냐고 물었다. 학교가 작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요즘 다들 크고, 많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데 그보다는 작은 것이 더 소중해서 그럴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작은 아이니까 누나보다 자기가 더 소중하겠다고 하였다. 난 작은 애의 농담에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막 켠 컴퓨터 익스플로러에 이 시간 지리산 자락 산골마을 빈 농가를 개조한 집에서 잠들어 있을 딸애의 즐겨찾기가 주루루 나타나서였다. 벅스뮤직, 바람의나라. 핑클홈, 지오디월드, 졸라맨, 넷 마블, 클레이지 아케이드, 넥슨클럽...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 왔다.

이 아이가 '작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들어갈 때, 또 대학을 간다면 그때 다시 입시 공부를 따로 해야하는 불행이 없기를 빌어본다.
사회에 진출하고 직장을 잡으려고 할 때 따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 일이 없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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