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무관심, 혹은 절정의 사고

<즐거운 책읽기> 장 보드리야르, '무관심의 절정'

등록 2002.03.14 22:34수정 2002.05.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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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대중문화관련 책을 읽다가 보드리야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아마 그의 책 <소비의 사회>에 대한 언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그 동안 명성으로만 알던 그의 저작을 직접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과 대담 형식이기에 아무래도 쉽게 쓰여졌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그에 대한 전이해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내용을 이해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책에 역자의 해제가 딸려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마저도 없어 내 나름대로 읽고 이해한 바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네그리의 최신작 <제국>에서 언급하는 것을 보니, 보드리야르를 상당히 초현실주의적인 틀로 되돌아간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제국/ 69쪽).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지적이 일정 부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제목에도 나타나거니와 그는 전반적으로 허무주의/냉소주의/불가지론적 경향마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같이 대담했던 필리프 프티(철학박사)가 니힐리즘에 대한 혐의를 물었을 때 그것을 완강히 부인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실의 환상에 대한 내 보잘 것 없는 문제 제기에서 가치의 차이, 혹은 상대주의는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최후의 경계선에 있다면, 극단적인 현상의 차원에 있다면 사상은 어떻게 됩니까? ...사상이 도전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실험적이어야 합니다."(56~57쪽)

그의 이 말이 그대로 사실이라면 그것은 학문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고 갖춰야 할 당연한 입장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사고를 너무 극단화시킨 나머지 '무관심' '냉소' '혼돈'으로까지 나아가 버렸지 않는가하는 의혹을 자꾸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어쨌든, 우리가 그의 글에서 모든 가치들에 급진적으로 도전하고자 하였던 니체의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니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말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가치의 위반적이고 과도한 변이를 꿈꾸었다. 실현된 것, 그것은 역행하고 퇴행적이며 퇴화하는 변이이다. 선악의 이편에서. 죽은 니체를 위한 기도. 우리는 가치들의 변화를 변모와 교체했고, 가치들의 상호적 변모에 가치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혼돈, 어떤 점에서는 이 가치들의 변이적 가치 하락과 교체했다. 가장 나쁜 것이 이 모든 가치들을 재평가하는, 그리고 이 가치들의 무관심한 변환을 재평가하는 현대의 상황이다."(10쪽)

보드리야르는 전부터 "하이퍼 리얼리티에서 실체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은 영화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도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함께 대담한 필리프 프티가 "당신은 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합니까?"하고 묻자, 그는 "영화적 마술의 쇠퇴 경향은 거기에서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답한다.


즉 영화가 고도의 기술, 특수 효과들을 사용하여 더 강한 리얼리즘 쪽으로 자신을 치장하더라도 그것은 하이퍼 리얼리티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들로 무의미성에 기여할 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무한한 가능성과 기술적·미학적 가능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도 더 이상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 영화인들도 이미지 자체에 대한 지독한 경멸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일컬어 저자는 '이미지들의 타락'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역사'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을 유지한다. 그는 "역사·의미·진보가 더 이상 해방의 속도를 발견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역사의 과잉으로 역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 상태와 일상의 삶, 성욕 등 모든 게 역사적인 것이 되어버린 마당에 사람들이 역사의 개념과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은 품귀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초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보드리야르는 일찍부터 생산, 이성적인 것, 역사가 끝났다고 주장해 인식론적으로는 냉소주의에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에 기울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도 받아왔다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이 유럽이라는 현실 하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서구의 타락을 말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서구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유럽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명백하고 역사적인 일종의 니힐리즘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부패된 이 사회에서 급진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133쪽)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저자가 허무·냉소적이기까지 한 주장들을 서슴지 않았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주장들이 한국의 현실에서 얼마나 적실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지구화되는 세계 속에 이미 깊숙히 편입되어 버린 우리네 현실에 대한 비판의 준거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틀림없다.

다음 그의 말들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세계화되었고, 정보 세계화의 원리는 연대성이라는 보편적 원리에 역행합니다. 정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소비되고, 자기 고유의 목적을 흡수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은 "나는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모든 것이 이미지입니다"라는 점 이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는 "나는 정보입니다. 모든 것은 정보입니다"라는 점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기호가 되는 것은 기호이고, 자기 고유의 공고를 만드는 것이 미디어입니다."(112쪽)


보드리야르(1929~)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또는 철학자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맑스주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제자인 그는 맑스의 경제학과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대담하게 아이디어를 따낸 현대 소비사회론으로 주목을 받았다. 종래의 맑스주의 경제학에서는 불분명한 소비가 범람하는 현대사회를 코드와 시뮬레이션이라는 하이퍼 현실로의 전환으로 이해하며, 경제학의 죽음, 불확실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불가능한 교환, 시뮬라시옹, 사물의 체계, 소비의 사회 등 그의 다수의 저작이 우리말로 이미 번역되었다. <현대철학산책, 백산서당 166쪽 참고>

무관심의 절정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은민 옮김,
동문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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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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