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정신이다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2.03.18 07:13수정 2002.03.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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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속에서 살다 보면 문장의 아름다움에 무심하게 된다. 화려하고 유려한 문체도 식상하고 감상적인 문체에는 정나미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 스스로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말이 나의 정신에 딱 달라붙어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는 문장들을 나열하고 나면 글을 쓰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마저 하게 된다.

요즘 서가를 정리할 일이 생겼는데 1년 전에 읽다만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서문에 몹시 매력적인 문장이 있어 오랫동안 잊지 않고 있었는데 가을이 되고 신변이 복잡해짐에 따라 심중에서 차차 물러났던 책이다. 책 자체는 일종의 주석서에 가깝고 또 더 나은 판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스스로 옮기고 평설을 단 자기 책의 변변찮음을 토설하는데 있어서는 이만큼 표현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변명을 한다면 그러니까 3년 전, 내가 죽을 곳을 찾아 내설악 무금선원에 와서 어영부영 죽을 날만 기다리고 지내는데 어느날 중노릇을 하다가 그만두고 속가로 나가 출판사에서 밥벌이하는 사제가 인사차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무슨 말끝에 <<벽암록>> 이야기가 나왔고, 그가 허장성세로 살아온 나의 허영을 집적거려 추어 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내가 한 번 풀어쓰기로 넨장맞을 약속부터 드립다 하고 말았다. 그 사제의 주문은 <<벽암록>>의 오묘한 뜻을, 말하자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맛들어서 몸에 자양이 되고, 또 몸의 자양이 우로가 되기까지를 다 밝히고, 그 나무를 켜 '곧은 결'에서부터 '점박이 결'까지 다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허나 솔직이 말해 나는 나무에 꽃이 피는 과정도 모른다. 다만 내가 한때 음력(吟力)도 없으면서 장구(章句)에 미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 책에서 장구를 훔친 도벽을 살려 감상을 덧붙여 말미에 달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본격적인 평창(評唱)이나 착어(着語)가 아니라 단순한 독후감이다. 과일 맛은 알 수 없으니 모양만 보고 느낀 대로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나무가 꽃 피우고 열매 맺고 그 열매, 몸의 자양이 되고 그 자양이 비와 이슬 되는 일을 다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 나무를 켜 그 감춰두었던 모든 결을 다 드러나게 하는 일은 다시 얼마나 어려운가.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기란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려움을 제대로 문장으로 표현해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평창'이나 '착어' 따위의 어려운 한자어가 섞여 있으나 그것이 이 문장의 맛을 흐리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단어의 의미란 문맥 속에서 유추될 수 있는 탓이다. '평창'이란 노래, 시를 비평함일 것이고 '착어'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원문에 주석이나 해설을 붙임을 의미할 것이다. 착설(着說)에 통하는 말이리라는 조언을 얻기는 하였다.

나는 한자어의 의미를 믿는 편이다.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탓에 문장이 깊은 뜻을 함축하려면 불가피하게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남용이 아니면서 그 뜻을 헤어릴 수 있게 한다면 그 또한 유용한 말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문장업에 종사해 왔건만 나는 앞에서 소개한 문장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그 뜻이 깊은 글은 쓰지 못한 것 같다. 한 사회의 문화의 기초는 그 언어에 있고 이를 표현해 주고 기록해 주는 것이 문장이다. 오늘처럼 외국어와 외국어 문장이 토착어와 무차별 혼용되는 시대라면 그 문장이야말로 그것을 쓰는 이의 정신의 고도를 드러내는 척도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랫동안 이곳을 비워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곳은 지난 1년 가까운 동안 내 고단한 삶의 위로자였고 나로 하여금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한 교사였다. 

어제 봉천동 고개를 지나가는데 겨우내 메마르기만 했던 개나리 가지들이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문득 다가온 봄은 마치 살아가야 할 이유를 던져주는 것 같다. 써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오랫동안 이곳을 비워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곳은 지난 1년 가까운 동안 내 고단한 삶의 위로자였고 나로 하여금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한 교사였다. 

어제 봉천동 고개를 지나가는데 겨우내 메마르기만 했던 개나리 가지들이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문득 다가온 봄은 마치 살아가야 할 이유를 던져주는 것 같다. 써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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