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조화의 세상을 소망하며

등록 2002.03.22 18:35수정 2002.04.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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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내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지요. 다시 말해 거의 매일같이 실행을 하거나, 일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여러 가지 고정적이고 정기적인 일들 중에서 내게 가장 큰 보람과 행복감을 주는 일은 뭘까 생각해 봤던 거죠.


미약하게나마 업으로 삼고 있는 글 짓는 일을 제외하고, 내가 매일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됩니다.

아침마다 날이 밝아올 시간에 맞춰 집 주변 아홉 개의 가로등·방범등을 끄는 일, 저녁 무렵에 고장의 백화산을 오르는 일, 아침이나 저녁에 평일미사에 참례하는 일 등이 거의 매일 되풀이되는 고정적인 일이지요. 또 요즘엔 한시적으로 오후 다섯 시에 아내와 제수씨를 자동차운전학원에 태워다 주고 또 한 시간쯤 후에 태워오는 일이 첨가되어 있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일로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아침에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에 가서 '사수(四水, 즉 생수·성수·육수·약수)'를 길어다가 열 여섯 집에 나누어 드리는 일, 목요일 저녁마다 성당에 가서 직장인 예비자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일, 화요일 저녁에 '성모의 군대' 모임에 참석하고, 금요일 저녁에 성가 연습에 참석하는 일 등이 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참석하게 되는 여러 가지 '모임'과 봉사 활동들에 대해서는 굳이 적을 필요 없고….

이런 여러 가지 중요한 고정적인 일들 중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주는 것은 뭘까? 여기에서 '미사 참례'는 논외로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사 참례는 하느님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가장 신성한 것인 데다가 내 생활의 기본이자 최고 중심이므로 다른 일들과 똑같이 비교 관점의 범주에다 놓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지요.


미사 참례를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놓고 굳이 생각을 기울여보니 '성가 연습' 쪽에 가장 마음이 가더군요. 그 모든 일이 내가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하는 것이므로, 기쁨의 농도와 보람 따위를 따진다는 것이 좀 부적절하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삶에 내재한 여러 가지 사연 곡절들까지 연관지어 볼 때 아무래도 성가 연습이 내게는 가장 즐거운 일일 듯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저녁 미사 후에 하는 성가 연습이 가장 즐거운 일이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일반적인 성가 연습은 청소년 시절부터 해 왔지만, 본격적인 4부 성가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아 연습을 하게 된 건 우리 태안성당의 4부 성가대가 정식으로 발족한 1995년부터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7년 세월이 흘렀군요. 여기에서도 세월 빠름을 절감할 수밖에 없고….

그 동안 참으로 많은 노래들을 연습했고, 아름답고 절묘한 4부 성가로 주일과 대축일 미사 전례 분위기를 열심히 도와왔습니다. 성가가 참으로 중요하고 좋은 기도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 성가라는 형태의 이 합송 기도 속에서 신자들은 더욱 일체감을 느낄 것입니다.

나는 정식으로 성가를 부를 때뿐만 아니라, 성가를 연습할 때도 기도하는 마음이곤 했습니다. 일반 성가책에 없는 새로운 노래를 배우게 될 때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몹시 어려운 곡을 연습하기 시작할 때는 정말이지 이걸 과연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요.

몹시 어려운 곡을 연습하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되도록 기도하는 마음이고자 했습니다. 성가의 곡조나 노랫말 속에는 참으로 많고 깊은 기도의 지향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감사와 찬미와 참회, 그리고 청원의 뜻들이―기도의 네 가지 요소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노랫말들을 곡조에 실어 발성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도 구애받음 없이, 참으로 열심히 반복적으로 소리내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때로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음껏 큰소리로, 또는 애절하게, 내가 절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내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너무 사사로운 얘기입니다만, 가시덤불 속 같은 험난한 삶의 질곡 속에서 울음을 삼키며 살 때, 나는 금요일 저녁마다 내 가슴속의 온갖 독소들을 청소해 내는 기분이곤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의 성가 연습으로 말미암아 내 육신의 피돌기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나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은 성실한 연습 끝에 얻게 되는 '화음의 완성'이지요. 몹시 길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곡의 악보를 처음 받았을 때는 역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베이스 음을 마스터하게 되고, 드디어 네 가지 소리의 절묘한 조화를 획득하게 되는데, 마침내 화음의 완성에 도달하게 될 때의 기분이란 그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을 듯싶습니다. 사실은 그 쾌감과 희열 때문에 내가 오십대 중반을 살고 있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성가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화음의 완성을 실감할 때마다 화음―조화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곤 합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 세상의 조화를 새삼스럽게 희구하는 마음을 갖곤 합니다.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며, 화음의 아름다움을 감득하며, 이 세상의 참다운 조화를 꿈꾸는 것―아아, 실은 내가 그 꿈을 위해서 나이 많은 성가대원으로 계속 성가를 부르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성주간'을 앞두고 있는 사순절의 막바지 시기입니다. 다른 성당의 성가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태안성당의 성가대는 사순절 전부터, 그리고 사순절 동안은 매주 3, 4일씩 강행군을 하듯 연습을 해왔습니다. '성삼일(주의 만찬 성목요일·주의 수난 성금요일·부활성야)'과 예수부활대축일의 장엄 전례 시에 부를 많고 특별한 성가들을 연습해 왔는데, 그 노래들 중에는 새 노래도 여러 곡이나 되지요.

가톨릭 교회의 성삼일 예절은 참으로 각별하답니다. 2000년을 이어오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들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도 성대한 전례들이 이 성삼일 동안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부활을 기념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 태안성당의 남성 성가대원들 중에는 내 나이 또래 형제들이 3명이나 된답니다. 우리는 굳게 약속했습니다. 나이 70살까지 성가대 활동을 하기로…. 아름답고 절묘한 화음을 감득하는 희열 속에서 계속적으로 이 세상의 조화를 희망하고 기도하며 살기로….

성가대의 화음은 한두 번의 연습으로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반복 연습이 필요하고, 우선적으로 연습에 빠지지 않는 성실한 자세들이 밑받침되어야 합니다. 많은 연습과 노력에 의해 아름다운 화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이고, 세상의 조화는 더욱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이 세상의 조화란 사람들의 더 많은 갈구가 필요하고, 눈물겨운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나는 우리 성당의 40여 명 성가대원들이 하나같이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모두 다 자기 음을 가지고 다른 세 가지 소리와 함께 화음을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그것에서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절묘한 화음의 세계를 선사하며 사는 사람들이지요.

나는 이 사회에 화음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조화의 세계를 선사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엊그제 예수성탄대축일 성가를 연습한 것 같은데, 그새 사순절 성삼일 성가를 연습하고 있고, 예수부활대축일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세월의 빠름 속에서 나도 이제 반백이 되었습니다. 온통 백발로 뒤덮이는 노년의 세월에도 성가 연습을 계속하고 화음 속에서 화음의 세계를 추구하는 삶을 계속하고픈 소망을 다시 한번 다져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 내가 특정 종교를 알리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으로 오해를 하거나 반감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나는 내가 신봉하는 종교가 이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앞장서서 기여하는 '조화의 종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의 조화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소박한 내 삶 속에서 스스로 화음의 세계를 추구하고 감득하는 이야기 하나 적어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와 관용을 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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