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색다른, 괜한 궁금증들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3.27 10:32수정 2002.04.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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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무렵에 집 근처 슈퍼마켓 앞에서 목격한 일입니다.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람과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함께 나란히 나온 그들은 부자간일 것이 거의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슈퍼마켓에서 사 들고 나온 담배갑을 뜯고 있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손동작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아버지의 동작이 내 눈에는 가관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천지가 모두 쓰레기통 아니면 쓰레기장인 줄로 착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답배갑에서 벗겨내고 뜯어낸 종이 꺼풀들을 그냥 허공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춘 나는 잠시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에게 충고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반드시 여기에서 담배갑을 뜯어야 했느냐. 뜯어낸 종이 꺼풀들을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든지 주머니에 넣어가야 할 것 아니냐.

그러나 나는, 대중목욕탕에서 물 꼭지를 한껏 틀어놓고 앉아서 때를 닦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슬그머니 가서 꼭지를 틀어 물이 조금씩 나오도록 해주곤 하는 내 습성을 문득 상기하면서도, 차마 그에게 충고의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혼자 있다면 충고를 해줄 수 있지만 어린 아들이 지켜보는 앞이니 아버지 체면을 고려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뇌리에는 이상한 의문이 달라붙었습니다. 그 젊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보여준 것은 결국 무엇일까? 그는 전국적으로 금연 열풍이 불고 있는 이 시절의 풍속과 상관없이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담배 피우는 모습단지 그것만을 보여 준 것일까? 담배갑을 뜯어 종이 꺼풀들을 허공에 버리면서, 그는 끝내 어린 아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 의문은 아들의 시각에 대한 궁금증으로도 전이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에 대한 호기심만을 품었을까? 종이 꺼풀을 함부로 버리는 아버지의 행위에서 부당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이상하게도 그 의문은 내 가슴에 무거웠습니다. 슈퍼마켓 안에 들어가서 우유를 사는 중에도 내 뇌리에서는 그 이상한 물음표들이 자꾸만 날카롭게 곤두서는 것만 같았습니다.

집에 온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슈퍼마켓 앞에서 목격한 그 장면을 설명한 다음 내 의문들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내 의문 하나 하나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 동의 여부를 취합해 보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자신의 행위를 지켜보는 아들의 시선을 느꼈을까, 느끼지 못했을까? 아들의 시선 따위엔 애초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설령 아들의 시선을 느꼈다 하더라도, 까짓 것 어때 하는 마음으로 태연히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은 아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나중에라도 느끼고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끝끝내 아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거나, 나중에 어느 순간 느끼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까지는 갖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들은 결국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담배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담배갑을 뜯어서 종이 꺼풀들을 함부로 버리는 그 행위까지 무비판적으로 본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그런 행위를 지금은 비판적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훗날 기억의 재생 속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내 가족들의 반응을 여기에 소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가족들의 반응이 어느 쪽을 선택했든 그것은 모두 확신도 확인도 할 수 없는 사항들일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각성이든 아들의 비판적인 시각이든 뭔가를 기대하고 희망한다는 것은, 자칫 일부 한국인의 부정적인 기질이나 습성과 연관하여 필요 이상으로 고뇌의 폭이 커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참으로 괜한 의문이긴 하지만, 당신은 내가 제시한 여러 가지 의문 중에서 어떤 물음표를 손에 쥐시겠습니까? 다시 말해 어느 쪽에 가능성을 거시겠습니까?

나로서는 그 아버지는 이미 구제 불능이더라도, 그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그런 행위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기를―지금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훗날 기억의 재생 속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를 소망하고 싶습니다만, 그것은 내 의식 속에서 변함없이 하나의 물음표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나의 이런 조금은 색다르면서도 괜한 의문들을 여러분과 착실히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한사코 붙들고 싶은 '희망'은 좀더 커지리라는 생각도 해 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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