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으로 그려낸 마테오 리치

히라카와 스케히로의 <마테오 리치>

등록 2002.04.01 14:45수정 2002.04.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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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에 나와 적잖은 인기를 끌었던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을 읽었던 독자들에게 또 한번 '마테오 리치'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나와 마음 설레게 한다.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의 「마테오 리치」(노영희 옮김·동아시아 펴냄)가 그것으로 924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도 그렇거니와 이 책을 쓴 지은이의 30년 내공이 쌓인 저작이란 점에서 책을 접하는 마음에 어떤 경이감까지 겹치게 된다.

지은이 히라카와 스케히로는 세계적인 비교문화학 분야의 석학으로 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 능통한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천착한 동서문화사의 해박함은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라 한다.


30년 내공이 쌓인 저작

그가 번역한 단테의 <신곡>이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것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는 말이 립서비스 차원의 말이 아님을 세계가 이미 알고 있는 터, 더더욱 그에 대한 신뢰감이 깊어진다.


그런 그가 1969년 1권만 덜렁 출간해놓고 있다가 30년이 지난 1997년에 이르러서야 2권과 3권을 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가 마테오 리치를 이탈리아어 원문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도쿄대 대학원생 신분이었던 1963년이라고 한다.

이때 그는 마테오 리치를 필생의 연구 테마로 정하고 비교적 시간에 자유롭던 전임강사 시절의 열정을 바쳐 1권을 낸다.

그리고 그는 바로 속권을 쓰려했으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아 자료를 모으고 글을 정리하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년퇴직 하자마자 사회주의 물이 덜 빠진 중국으로 날아가 비자 관계로 베이징에 있는 일본학 연구센터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며 저술에 매달린다.

'스위스 시계'라는 별명을 가진 지은이가 30년 동안 출판사와 독자의 속편 독촉 전화를 받거나 1권만 읽고 사망한 독자의 부음을 들어가며 이렇듯 쓴 이 책은 우리말로 옮기는 데만도 2년이 넘게 걸렸고, 세 권으로 된 원전을 한 권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 있는 '천주'(天主)니 '아세아'(亞細亞), 구라파(歐羅巴), 기하(幾何) 같은 서양말의 한자 표기를 한 장본인인 마테오 리치(Matto Ricci : 1552∼1610)는 명 궁정으로 들어가 만력제를 알현하려 했던 이탈리아인 예수회 선교사로 한자권에서는 리마두(利瑪竇)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진정한 세계인이었다!

그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새로운 땅에 대한 착취의 의미가 더 강한 서구의 지리상 발견과는 달리 동서문명 융합의 진정한 세계인(uomo universale)으로서 중국에 들어온다.

신학 인문학 어학 천문 지리 수학 과학 미술 등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진정한 르네상스인이었던 그는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하면서 중국의 사상과 동양의 인문주의를 접하며 감탄했고, 실제 공자와 사서 등의 동양사상을 서구에 소개한다.

그는 유생 복장을 한 선교사였으며 중국인의 이해와 관심 속에서 그들의 문화를 존경하고 사랑하였으며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토교를 중국인의 가치와 관습에 맞추려 했다.

하기야 이것은 훗날 전례(典禮)논쟁으로까지 비화하여 예수회 자체의 존폐문제까지 치달았으며, 그의 업적도 1939년 교황 피우스 12세에 의해 재평가되기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마테오 리치라는 걸출한 역사적 인물에 걸맞는 후세의 걸출한 연구자가 400년 시공을 뛰어넘어 만났으니.

덧붙이는 글 | 마테오 리치
히라카와 스케히로 / 동아시아 / 924쪽 / 36,000

덧붙이는 글 마테오 리치
히라카와 스케히로 / 동아시아 / 924쪽 / 36,000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이산,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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