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메일 회원은 '왕따' 시키겠다?

'온라인우표제' 강행에 한메일 거부 확산

등록 2002.04.03 14:53수정 2002.04.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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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터넷카드업체가 기자에게 보낸 메일은 한메일 계정 변경을 요청하는 '최후통첩'이었다. ⓒ 오마이뉴스

"한메일 계정을 쓰고 계신 회원들은 다른 이메일 계정으로 변경해 주십시오."

얼마 전부터 기자가 가입돼 있는 몇몇 인터넷쇼핑몰과 인터넷카드 사이트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메일이 속속 날아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계속 한메일 계정을 사용할 경우 정상적인 메일링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다른 이메일 계정으로 변경하는 회원에게는 각종 할인 혜택이나 경품을 제공하겠다는 '당근'이 던져졌다.

'온라인우표제' 강행에 '한메일 거부' 확산

4월1일 다음커뮤니케이션(대표 이재웅)의 '온라인우표제' 시행을 앞두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디어유, 레떼컴 등 200여 개의 이메일자유모임(대표 김경익 레떼컴 사장) 진영 인터넷업체들은 한메일 계정을 쓰는 자사 회원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회유 작전'에 나섰다.

결국 자신의 한메일 계정을 이들 인터넷사이트에 등록시킨 네티즌들이라면 메일 계정을 일일이 변경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메일 계정을 바꾸지 않으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메일을 받지 못해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호소할 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온라인우표제를 둘러싸고 수개월째 계속된 다음-안티다음 진영간의 '이전투구'가 결국 네티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타협은 없다" 양측 첨예한 대립


▲ 지난달 13일 이메일환경개선협의회 주최로 열린 스팸메일 문제 법제화 토론회 ⓒ 오마이뉴스 김시연

회원수가 3000만명에 달하는 한메일(hanmail)은 전체 시장의 70%를 장악한 국내 최대 웹메일서비스다. 한메일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시장 장악력을 토대로 지난해 6월 '온라인우표제'를 연말부터 도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온라인우표제란 한메일 회원에게 하루 1000통 이상의 대량 메일을 보내는 기업이나 단체로 하여금 1통당 10원씩의 우편료를 부담시키는 유료서비스.

다음은 대량 스팸메일을 막기 위한 방안임을 내세웠지만 결국 매달 적게는 수백만에서 수억원의 막대한 우편료를 떠안게 된 주요 인터넷기업들 입장에선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레떼컴, 디어유 등 100여 개의 중소 인터넷기업들이 즉각 반발했고 지난해 11월 이메일자유모임을 통해 본격적인 '온라인우표제 거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정통부가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이메일환경개선추진협의회를 조직해 중재에 나섰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온라인우표제 논란은 지난달 다음이 4월1일 강행 방침을 밝히고 이에 맞서 '안티다음 진영'이 '한메일 계정 전환운동'을 펼치면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논란의 본질은 스팸메일이 아니다"

▲ 스팸메일 토론회에서 나란히 앉은 이메일마케팅협의회 김태윤 회장(맨 왼쪽)과 다음 임준우 CPO(가운데), 이메일자유모임 이수종 사무국장. ⓒ 오마이뉴스 김시연

다음 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준우 CPO는 "스팸메일이 범람하는 원인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일부 선의의 업체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온라인우표제는 일부 업체들의 무분별한 메일발송을 줄이고 정보성 메일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1일부터 한메일 계정으로 IP 당 하루 1000통 이상의 메일을 보내려면 1통당 10원짜리 '온라인우표'를 선구매나 후불로 구입해야 한다. 우편료를 면제받으려면 수신자의 70% 이상이 이를 정보성 메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이에 이메일자유모임, 이메일마케팅협의회 등 안티다음 진영에선 온라인우표제의 스팸메일 규제 방식을 문제삼고 나섰다. 이메일마케팅협의회 김태윤(KT인터넷 대표) 회장은 "스팸메일은 수량이나 정보성/ 상업성 여부가 아닌 퍼미션(메일수신 사전동의) 여부로 구분해야 한다"면서 "회원들에게 퍼미션(메일수신 사전동의)을 받기까지 마케팅 업체의 노력과 비용 또한 간과해서 안된다"고 지적했다.

안티다음 진영에서 온라인우표제를 환영하는 곳은 성인 정보를 당당하게 보낼 수 있게된 '성인사이트들'뿐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우표제 논란은 스팸메일 방지 문제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왔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수익모델로 만성적인 적자구조에서 탈피하려는 다음측과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 추가 비용이 부담스러운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이전투구'에 가깝다는 게 네티즌과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인터넷서점에 한메일 계정으로 가입한 임상백 씨는 지난 27일 이메일자유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메일을 수정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본사의 어떠한 정보도 받아볼 수 없다는 경고성 메일을 받고 다른 이메일로 수정했지만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면서 "어차피 고객들을 빌미로 본인들의 근시안적인 수익 챙기기인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아 보인다"며 꼬집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최경진 전문위원은 "다음의 온라인우표제는 스팸메일과 직접적인 상관성이 없어 보인다"면서 "다음측과 같이 과금을 통한 대량메일에 대한 제한 측면에서의 접근이나 반다음측의 메일발송자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자신들의 이익유지를 위한 강력한 법적 규제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은 모두 그 출발점이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피해는 결국 네티즌의 몫

▲ 다음의 온라인우표제 안내 공고.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메일자유모임에서는 온라인우표제 피해신고센터(www.freemail.or.kr)까지 개설해 온라인우표제와 다음에 대한 반대 여론을 끌어 모으고 있다. 전반적으로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만 온라인우표제에 찬성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다. 그동안 스팸메일에 시달려온 네티즌들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비용 부담이 없는 온라인우표제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메일 계정 전환 운동'이 점차 주요 인터넷쇼핑몰, 금융기관 및 일반기업 사이트 등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현재 각 업체별로 메일 전환 참여자 비율은 1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90%에 이르는 한메일 회원들은 4월1일 이후 이들 업체의 메일 수신이 어렵게 된다. 안티다음 진영 일부 인터넷업체들이 한메일 회원에 대한 메일 발송을 일체 중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광고성 메일 뿐 아니라 쇼핑몰 주문확인, 은행 입금확인 등 정보성 메일 수신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양측 모두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고 있지만 반목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다. 지난 28일 다음은 '한메일 전환운동'은 영업권 침해라며 이메일자유모임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메일자유모임 김경익 대표 역시 "온라인우표제 시행 이후 피해사례는 다음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피해사례를 모아 공정위에 제소하는 한편 IP 블로킹이 기업과 회원의 계약관계에서 권리제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법원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서로 '공정위 신고'나 '법적 조치' 운운하고만 있을 뿐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무리하게 시작된 '온라인우표제'의 파행에 따른 1차적인 피해는 결국 양측의 사이에 낀 한메일 회원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온라인우표제 시행 이틀째인 4월2일 한메일 회원에게 보낸 5만2000통의 메일이 다음측에 의해 차단돼 반송됐다고 밝힌 인터넷쇼핑몰 넷포츠의 박인철 사장은 "네티즌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느끼기 전에는 관심 없겠지만 이용 당사자에게 피해가 가기 시작하면 큰 파장이 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최경진 전문위원은 "양측의 불협화음과 그로부터 발생된 스팸규제에 대한 논의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자칫 논점에서 벗어나 기업들이 이익추구를 하는 이전투구의 장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며 다시 원점에서 타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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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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