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간 제비를 찾습니다

이형덕의 <전원일기 6>

등록 2002.05.01 23:53수정 2002.05.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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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니 겨우내 뵈지 않던 새들이 마당까지 내려 앉습니다.
조팝나무 덤불 속에서는 박새들이 종알거리며 넘나들고, 얼어 붙었던 웅덩이에도 오리와 원앙이가 날아듭니다. 신록을 내미는 낙엽송 가지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들이 저마다 특유의 울음소리로 지저귀면, 어디선가 먼 숲에서 그와 똑같은 소리로 화답이 옵니다.


워낙 새에 대해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그 크고 작은 새들의 이름을 구별하기 어렵지만, 만만한 게 산비둘기입니다. 이 친근한 녀석은 숲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도 밭에 씨라도 뿌리고 나면 영락없이 알아내곤 옥수수나, 콩, 호박씨들을 골라 먹습니다. 일부러 멀리 쫓고나서 아무도 보지 않는 걸 확인한 후, 그것도 모자라 옷자락으로 가리고 살그머니 옥수수알을 깊이 묻어 두어도 잠시 후면 그 자리를 알아내곤 날아옵니다. 어차피 뿌리는 씨의 얼마쯤은 새의 몫이거니 여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마을에서 비켜서서 산자락에 붙어선 곳이라 찾아 오는 새들도 많은데, 그 가운데는 머리에 뿔 같은 걸 매단 후투티란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 재밌는 관을 쓴 후투티는 자동차가 다가가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빤히 바라보아, 제풀에 실증이 나 날아갈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지요.

창으로 들려오는 작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아침은 참 아름답습니다. 대개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새들은 몸집이 작은 녀석들이더군요. 그리고 봄볕이 나른해지는 한낮이면 산은 온통 새들의 노래소리로 가득찹니다. 검은 깃털에 노란 장화를 신은 듯한 새도 있고, 따다다닥... 나무둥치를 쪼는 딱다구리 소리도 들립니다. 놀랍게도 집 바로 밑에 밑둥만 남은 고목이 있는데, 거기서 나무망치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군요.

대문 앞에 매달아 놓은 우체통에는 작은 새가 나뭇잎을 물어다가 보금자리를 잡아서, 우체부 아저씨에게 우편물을 그곳에 넣지 말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뻐꾸기도 있고, 소쩍새도 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습니다. 제비입니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추녀 밑에 부지런히 둥지를 틀던 그 날렵한 제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해에도 보이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비 보기가 드물어진 게 요즘의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겠지요.


흥부전에도 등장하는 제비는 아마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삶을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해온 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날렵한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가슴에는 하얀 셔츠를 받쳐 입은 멋쟁이.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5년 전 물골로 들아와 불당골에 전세를 살 때입니다.

주인이 내놓고 간 집에 몇 년만에 처음 들어왔다는 제비가 추녀 끝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낮은 농가라 집으로 드나들 때마다 제비와 거의 눈이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 해 여름, 제비는 두 마리의 새끼를 낳고, 부지런히 벌레들을 물어 날랐습니다. 이따금 실수로 떨어뜨리는 메뚜기나 파리들은 댓돌 밑에서 기다리는 두꺼비의 몫이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제비가 종알거리고, 발밑에는 두꺼비가 있던 시절...

그 제비가 돌아간 뒤로도 나는 설마 그것이 제비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지요. 다음 해에 돌아올 줄 알고, 남기고 간 집이 무너질까 받침대도 만들어 놓고 기다렸건만 제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건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물골, 아니 남양주 어디에서도 그 날렵하게 허공을 날며 날벌레들을 나꿔채던 제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조류학자나 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날아오던 제비들의 번식지로서 이미 우리의 환경이 적합하지 않게 되었으며, 농약이나 환경 호르몬 등에 의해 오염된 벌레들이 제비에 의해 2차 중독이 되어, 그 산란에 장애를 초래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정말 인간이 어떤 짓을 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좀더 편하게 살게 된 뒤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그 삶을 잃어 버렸는지....
어쩌면 아직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참새나 까치도 언젠가는 제비와 같은 운명이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지난 해 산 너머에 있는 나의 작은 연못에 낚싯대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자니, 오색이 영롱한 왕잠자리 한 마리가 호수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오랜 만에 만난 왕잠자리를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 그것이 왕잠자리의 마지막 한 마리가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 보았습니다.

어디 그리운 게 왕잠자리뿐일까요. 국민학교 때 필통을 열면 너나 할 것 없이 몇 마리 쯤 들어 있던 사슴벌레, 풍뎅이, 딱정벌레, 방아깨비, 땅강아지가 있지요. 요즘 아이들은 다마고치를 가지고 놀지만 그때의 아이들은 모두 자연과 그 속의 생명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것이 지닌 소중함과 친근감을 길러나갔던 것이지요. 어느 덧 봄을 훌쩍 보내고, 제비 없이 맞이했던 봄날의 허전함에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올해 제비가 찾아와 새끼를 치고 간 곳이 있으면 꼭 좀 소식 주세요. 아직도 우리 곁을 찾아 오는 제비가 몇 마리라도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허전함을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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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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