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누구와 만나는가

영화 속의 노년(28) - <하트 인 아틀란티스>

등록 2002.05.10 14:51수정 2002.05.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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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진 작가 바비 가필드는 어린 시절 친구인 설리가 유품으로 남긴 야구 장갑과 함께 그의 부고를 받는다. 장례식에 참가한 바비는 세 단짝 친구 중 한 명이었던 여자 친구 캐롤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 집을 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다섯 살 때 아빠를 잃고 엄마와 둘이 어렵게 살고 있는 11살 바비. 생계를 책임지면서 아이를 길러야 하는 젊은 엄마는 하루 하루가 힘겹기만 하고, 그래도 바비는 씩씩하다. 원하는 자전거를 사지 못해도, 설리네 가족이 함께 여행 떠나는 것을 배웅하면서도 씩씩하고 기죽지 않는다.


어느 날, 바비네 집 2층에 간단한 소지품만 가진 할아버지 테드가 이사를 온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읽어내는 테드와 가까워지는 바비. 테드는 바비에게 1주일에 1달러를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신문 읽어주기와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면 알려주는 일. 테드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FBI가 테드의 심령술 능력을 사용하려고 행방을 쫓고 있다. 결국 그들은 테드를 찾아내고, 바비는 테드의 도주를 도우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쫓기며 숨어사는 할아버지 테드, 젊은 나이에 살기 빡빡해 늘 속상한 엄마 리즈, 돈도 없고 아빠도 없고 힘겨운 아이 바비. 이들은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나. 바비는 그래도 아이다운 활력으로 단짝 친구들과 어울려 숲으로, 계곡으로 뛰어다니면서 위로를 얻는다. 엄마 리즈 역시 우여곡절 끝에 다른 도시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테드는 어떨까.

테드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이야기들을 한두마디씩 해주는 것으로 바비의 마음 속에 씨앗을 심는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10년 같지만 나이 들면 모든 것이 한 순간 같은 것, 어렸을 때는 세상이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같은 낙원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늙은 사기꾼같은 것.

무심코 흘려 들었지만 그 말들은 바비에게 그대로 건네져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늘 엄마는 아빠를 나쁘게만 말해왔는데 우연히 알게 된 아빠의 좋은 점도 받아들이게 되고,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향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어떻게 사니?'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사는 거죠'라고 씩씩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누워 있는 나무 위에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아무 고통도 고민도 없어보인다. 나무한테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에게 무슨 고민이 있으며 고통이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자신의 초능력이, 능력이 아닌 짐이 되어버린 테드 할아버지는 그래서 아이를 만나 그 마음을 전했나보다. 아이가 아니면 아무도 받아들여주지 않았을 테니까.


11살에 만난 할아버지를 통해 낯설고 험한 세상을 살아나갈 용기와 힘을 얻은 바비. 우리 삶에서의 만남이란 얼마나 사소하면서 또 무거운 것일까. 스쳐가야 할 만남이 올무가 돼서 사람을 묶어놓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단순한 만남이 두고 두고 그 사람의 생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기도 한다.

오늘 나 누구와 만나는가. 마주 앉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꺼놓지 못하는 휴대폰은 또 누구의 부름을 기대하는가. 테드와 바비는 서로에게 집중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래서 서로를 얻었다. 바비는 엄마에게 울면서 말한다. '테드는 아빠이자 친구였어요.' 11살 그날 이후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이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오늘 마땅히 서로에게 집중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Hearts in Atlantis 하트 인 아틀란티스 / 감독 스콧 힉스 / 출연 안소니 홉킨스, 안톤 옐친 외)

덧붙이는 글 (Hearts in Atlantis 하트 인 아틀란티스 / 감독 스콧 힉스 / 출연 안소니 홉킨스, 안톤 옐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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