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화내면 만원 달라고 하세요

살아 있기에 떠드는 아이들

등록 2002.05.12 18:24수정 2002.05.15 15:49
0
원고료로 응원
이렇게 가다보면 내 인생도
떠드는 아이들과 싸우다가 끝나겠지
아이들 나무라는 일도 지겨워
목청을 조금씩 높여 수업을 하다보면
선생 하는 일이 약장수와 다를 게 없다
말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말로 풀어먹어야 하는 약장수는 괴롭다
눈을 부아리고 핏대를 올려도
슬슬 눈치보며 떠드는 아이들이
손가락 하나로 불러내면 냉큼 나와
무릎 끓고 손까지 들고 앉아 있다
손을 내려주고 무릎도 펴주고
콩나물 교실이 죄지
너희들의 죄가 아니라고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세상에서
그렇게 길들여진 것뿐이라고
등을 다독여 제자리로 돌려보내면
돌아가서 다시 떠드는 아이들

-졸시, '떠드는 아이들' 중에서


요즘은 그런 말이 자주 들리지는 않지만 불과 두세 해 전까지만 해도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말이 무슨 유행어처럼 떠돌았습니다. 그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충격적인 장면들과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가끔은 이것이 '교실붕괴'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 만큼 그 말이 실감으로 다가올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떠들썩한 수업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초임교사 시절에는 '떠드는 수업을 하자'라는 일종의 슬로건 같은 것을 내걸고 수업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지만, 한편으로는 실업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첫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떠들 수 없습니다. 살아 있기에 떠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혼자서 떠드는 수업보다는 여러분과 함께 떠드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수업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주인은 떠들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수업모형도 아이들이 모둠별로 앉아 떠들면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짭니다. 50분 수업에서 교사인 제가 사용하는 시간은 길어야 15분 정도입니다. 모둠별로 머리를 맞대고 주어진 퀴즈를 푸는 시간에는 영어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신가요도 과감하게 틀어줍니다. 떠드는 수업이니 아이들이 떠드는 일로 곤란해질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떠들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15분입니다. 그 15분 동안 제 머리 속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쉴새없이 스쳐갑니다.

'절대로 화를 내지 말자. 화를 내는 것은 수업의 실패다.'


아이들을 떠들게 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떠드는 몇 아이를 불러내어 시범 케이스로 매질을 가하거나 혹독한 벌을 주면 그만입니다. 이런 행위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도 이유지만, 그렇게 되면 그 수업은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능동적인 수업이 되기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아이들이 제 수업시간을 기다려주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미움을 갖게 됩니다. 미움으로 배운 지식은 미움으로 쓰여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매를 대거나 화를 내지 않고 아이들을 수업으로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교사의 일입니다. 일 중에서도 아주 중요하고 큰 일입니다.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그런 전문적인 일을 게을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이 교사의 일이라는 인식도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작년부터 학급당 학생수가 35명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교사가 매를 들거나 인격적인 모독감을 주지 않고 아이들과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숫자가 절반은 더 줄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떠드는 아이들을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일은 교사의 일이라기보다는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긴 합니다. 아무튼 누군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최종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오해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떠들면 혼을 낼 듯이 불러냈다가 그냥 돌아가 앉게 합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일로 자주 화를 내고 거기에 시간을 써버리면 떠들지 않는 아이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 정도로 경각심을 주어 보내는 것입니다. 정도가 심해지면 매를 들기도 합니다. 몇 대 맞을 건지 물어보고 힘껏 내리칩니다. 하지만 매가 그 아이의 손에 닿지는 않습니다. 그런 동작은 열 번 스무 번 반복합니다. 빈매를 저는 시치미를 뚝 떼고 준엄하게 내려칩니다. 그런 매를 맞고 돌아간 아이가 그 수업시간에 다시 떠드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떤 경우는 정말 매를 댑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손에 제 손을 나란히 하여 매를 칩니다. 그런 매를 저는 한 대 이상 때려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화들짝 놀라 저 혼자 맞겠다고 우겨대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아이를 돌려보냅니다.

"아이구! 그래도 선생님 생각을 퍽도 하네."

이렇게 매를 아끼다가 정말 매를 대게 되면 그 아이는 그 매로 인한 물리적인 아픔보다도 저로 하여금 매를 들게 했다는 자책감 같은 것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도 숙연해집니다. 매를 댔지만 아이와의 인간관계가 해를 입지는 않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서 아이의 그릇된 마음이 바로 잡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사의 잦은 화에 감동을 받는 아이는 없습니다.

상을 줄 만한 아이는 상을 주고 벌을 줄 만한 아이는 벌을 주는 일이 상식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태도이긴 합니다. 하지만 벌을 받을 만한 일을 자주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인격적인 흠이 있는 아이라면 그 벌로 인해 반성을 하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희박해집니다. 제 잘못을 쉽게 돌이킬 수 있는 아이라면 그런 일을 아예 저지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벌을 주는 방법도 충분히 연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미성년자의 경우 그들에게 가해지는 벌은 잘못에 대한 응징의 성격보다는 죄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의 마음의 가난함을 '죄'가 아닌 '결핍'으로 읽을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미움이 가는 아이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 미움이 씻어질 때까지는 그 아이를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면 그때 아이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사실은 그 아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한 아이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마음속에 깃들이면 제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감과 피로감이 동시에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아침 일찍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런 글귀를 써서 TV모니터에 띄워놓았습니다.

"오늘 선생님이 화를 내거든 만 원을 달라고 하세요."
"요즘 선생님이 너무 자주 화를 내서 미안했어요."

그 글씨를 읽는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몇 아이는 제법 어른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잘못은 자신들이 하고 선생님이 사과한다는 그런 기특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런 한 순간의 감동으로 인해 다음날 떠들지 않을 우리반 아이들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날 종례 시간, 제가 아이들을 약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지금이라도 선생님 화나게 해보지 않고?"
그러자 다른 아이도 아니고 반장인 샛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가버립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자리에서 '우'하고 일어나더니 출입문 쪽으로 와르르 몰려갑니다. 그러더니 저를 약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화나시죠? 솔직히 화나시죠?"
저는 대답대신 그 옛날 장군들의 호쾌한 너털웃음을 흉내내어 오랜만에 크게 한번 웃어 보았습니다. 주번과 함께 창문을 닫으며 밖을 바라보니 찬란한 오월의 숲이 실로 눈부셨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5. 5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