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부끄러운 스승이 되기 위하여

"저희들도 선생님 사랑이 필요해요"

등록 2002.05.15 18:24수정 2002.05.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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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우리 반 귀염둥이 민희가 교무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때 은사님을 찾아 뵙기로 친구들과 약속을 했는데 특기적성수업을 한 시간만 하고 가면 안되겠느냐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고 만나기로 약속을 하지 그랬느냐고 나무랐지만 죄송하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공손하게 청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한 생각도 들어서 결국 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민희를 보내놓고 저는 문득 스승이라는 단어의 어감에서 현재가 아닌 과거의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혹은 30년쯤의 세월이 흐른 뒤에 한 제자가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이 적힌 축전이라도 보내오면 그럴 법하겠지만, 지금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스승이란 말을 듣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스승이 날이 5월이다 보니 만난 지 80일이 채 안 되는 아이들에게 은혜를 베푼 기억도 없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듣는 것이 미안하다 못해 곤혹스러울 때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반장 샛별이의 안내를 따라 교실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3학년답게 스승의 날 준비를 퍽도 야물게 했습니다. 교실에 설치된 멀티미디어 장비를 이용하여 스승의 날 노래를 함께 부르고 예쁜 선물도 준비하여 편지와 함께 제게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늘 받기만 하던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주는 입장이 되어 정성을 쏟고 있는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이것도 교육이지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오늘 교실에서 어디 눈을 둘만을 곳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40명 아이들의 눈을 하나 하나 맞추어 주고 싶었지만 수업시간 마다 늘 해오던 일도 오늘은 제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어색하기만 하고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청하지도 않은 노래를 자청하여 부르면서 그 어색함을 감추어야만 했습니다. 역시 사랑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편하고 즐거운 것인가 봅니다.

꾀꼬리 현진이가 제 노래에 대한 답가를 부르고 난 뒤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복도 쪽이 소란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몰려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방지축인 아이들이 언제 만나 그런 장한 모의를 했을까 싶게 한 아이의 손엔 네 개의 촛불이 일렁이는 근사한 케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저의 입김에 의해 촛불이 꺼지자마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한 목소리로 스승의 노래가 울러 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반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을 때는 듣기 민망하고 거북하기만 하던 스승의 은혜라는 가사가 어찌된 일인지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고 더 할 수 없이 정감 있는 언어로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애써 참느라 잠시 허공으로 시선을 둔 제 귀에는 가을비와도 같은 아이들의 흐느낌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목을 놓아 울던 한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무슨 의견이라도 내듯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한 번 세게 안아봐요."
"그래, 나도 너희를 안아보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껴안긴 채 또 한동안을 넋을 놓고 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실에 있는 반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아이들을 보내놓고 교실에서 저를 기다리는 반 아이들에게 돌아가 이렇게 변명 삼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3학년이어서 그런지 모두 하나 같이 훌륭하고 어른스러운데 작년 아이들은 좀 그렇지 못했어요. 아직 1학년이라 철도 덜 들어서 그랬겠지만 가정적으로도 어려운 아이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사랑이 더 많이 필요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제가 담임이면서도 오히려 배우고 싶은 마음이 늘 들곤 하는 참하고 성실한 은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들도 선생님 사랑이 필요해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척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과의 사랑이 한 단계를 뛰어넘은 듯한 느낌마저 들면서 가끔은 낯설게도 느껴지던 아이들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속에 낯선 존재로 서 있던 제 자신도 더 할 수 없는 편안함과 다정함의 옷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저는 행복한 남자였습니다. 행복의 절정에 불을 당긴 것은 2년 전에 담임을 맡은 적이 있던 한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숙녀가 되어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저를 찾아왔지만 제겐 여전히 아이입니다. 저는 가출한 그 아이를 찾아 수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말만 듣고 수원에 있는 주유소를 다 뒤져볼 생각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수원을 제가 살고 있는 시골 도시쯤으로 잘못 안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4시간을 택시로 돌았지만 그 아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기어이 찾으려 했던 것은 교사로서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유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극적으로 그 아이를 만나 그날 마지막 밤 열차로 함께 내려오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아이가 저와 함께 순천에 내려온 것은 학교에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남자 친구의 생일을 맞아 그에게 가는 길에 저와 동행을 한 것뿐입니다. 저는 역에 내려서도 1시간 가량 설득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혼자서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돌아온 것은 그후 열흘 정도가 지난 뒤였습니다. 왜 돌아왔을까? 나중에 물어보니 그 아이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드릴려구요"

물론 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닥은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스승으로 둔 제자라면 말입니다. 사랑과 행복의 감정은 감염될 수 있으니까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저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감염시키는 그런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스승이라는 말 앞에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앞으로 스승의 날은 휴무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주체는 현재의 아이들이 아니라 과거의 제자들이었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앞으로 스승의 날은 휴무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주체는 현재의 아이들이 아니라 과거의 제자들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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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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