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떼무덤을 만날 수 있는 곳

5월이 가기 전에 고창에 가야 하는 이유 ②

등록 2002.05.23 14:20수정 2002.05.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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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참 어이없게도 경이로움이나 경외감이 아니라, 난데없는 친근감이었습니다.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어릴 적, 동네 뒷산에서 남의 무덤을 타고 놀던 가락 덕분인지 오래된 무덤을 앞에 두고 저는 두려움이 아니라 손을 내뻗어 만지고 싶은 익숙함을 먼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본 고인돌이 산에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었고, 의자로 쓰기에 딱 알맞게 평평한 그런 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권력을 가진 족장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제사를 지냈던 공간이라고도 하는 고인돌을 만나러가는 길은 높디 높은 왕릉을 뵈러 가는 것과는 참으로 다른 마음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 옛날, 돌을 옮기느라 힘들었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계급 사회 형성의 증거가 되는 고인돌을 보는 일이 그저 마음 편하지만은 않습니다만.

파주에서 떼로 늘어선 고인돌 무지를 본 이후 이 곳에서 다시 떼무덤을 만납니다. 2500년 전부터 약 500년 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의 가족묘였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곳이지요. 가만히 들어보면 옛 사람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올 법도 한, 신비한 땅 고창에서 말입니다.

93년 유홍준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고창의 고인돌 무덤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500여 개의 고인돌이 야산에 즐비하여 언젠가는 고인돌 동산으로 옛 사람의 체취를 느끼는 공원이 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 것은 유네스코에서 이 곳의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부터입니다. 고창에 가서 일부러 고인돌까지 돌아보고 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으로선 택하기 힘든 코스니까요. 고인돌, 하면 우선은 강화도가 유명하고 고인돌 공원을 만들어 둔 순천 정도였지요.

"저기다는 주차장을 만들고, 또 저그다는 고인돌 박물관을 만든다고 하더라고. 땅도 주민들한테 벌써 다 사 뒀다지? 유네스코에서도 돈을 좀 준다고 그러더만."


뙤약볕 아래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던 아저씨의 설명입니다. 조만간 이곳도 넘쳐나는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말겠지요. 유홍준 덕분에 아우라지의 적막한 고요가 깨진 것을 누구보다 아까워하는 저로서는, 이곳만은 제발이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순례하는 마음으로 들러가는 곳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은 고인돌마다 밧줄로 금줄을 만들어둔 상태입니다. 아직 편의시설 같은 건 조금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고, 바닥에 물도 많아서 질척대지만 뭐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요. 암만요. 고창의 고인돌 무지는 1코스부터 6코스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3코스는 100여 기의 고인돌이 언덕에 줄지어 누워 있는 모습이 장관이고 6코스로 분류된 도산리의 북방식 고인돌은 그 잘 생긴 풍모 덕분에 먼 길 돌아간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게 해줍니다.

오래 전, 고창을 선택한 선조들 덕분에 지금의 고창 사람들의 삶이 변해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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