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 나간다. 전교생이 나와 서면 일인당 한 평도 차지 못할 좁은 땅이지만, 그래도 벌써 더운 기운이 느껴지는 교실보다는 운동장이 나은지,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축구 골대는 양쪽으로 하나뿐인데, 그 속에서 달리는 아이들은 서너 팀쯤 되는 것 같다. 공이 서너 개 이리 저리 날아다닌다.
별관 쪽 등나무 그늘에는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도 몇 있다. 답답한 교실에서 점심을 먹는 것보다는 먼지가 일더라도 밖에서 먹는 것이 더 나은가보다. 소풍 온 것처럼 등나무 그늘에 도시락을 늘어놓고 반찬을 나누어 먹는 아이들이 편안해 보인다.
어제 학생부장이 도시락은 반드시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먹도록 지도해 달라고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등나무 그늘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하긴 담임이 아이들 점심 먹는 지도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생부장은 아이들이 밖에서 밥을 먹으면 반찬을 아무 데나 흘려 교내가 지저분해진다고 질색팔색이지만, 학교 다니면서 도시락 먹는 재미만큼 즐거운 것이 뭐 또 있었던가. 나도 학교 다닐 때 가장 신났던 기억은 점심시간 학교 뒷산 숲 속에 들어가 도시락 먹던 것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욱한 먼지 속을 뚫고 이곳저곳 걸어본다. 운동장 한 켠, 아이들이 모여 금을 그려놓고 서로 뚫고 다니고 붙들고 난리다. 보니 오징어 땅따먹기를 하는 중이다. 나는 놀이에 신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도 한 때 저런 놀이를 즐긴 적이 있었다. 이제는 시켜준다고 해도 운동신경이 죽어있어 한 번에 나자빠질 게 뻔하다. 그저 아이들 놀이나 구경꾼이 되어 바라볼 밖에.
한동안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를 구경하며 그런 생각을 하다 발길을 옮긴다. 등나무 그들에는 도시락을 먹던 아이들이 다 사라지고, 이제는 그늘을 즐기려는 몇 아이가 의자에 누워 있다.
여전히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운동장이 좁아라 공을 몰고 달린다. 교복을 입은 채로 하는 축구라, 한 번 넘어지면 상의와 하의가 온통 흙투성이다. 하의는 색이 회색이라 좀 덜하지만, 군청색인 상의는 먼지가 묻으면 금방 지저분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축구를 하고, 오늘 집에 돌아가면 또 엄마한테 잔소리깨나 들으리라.
별관 뒤로 걸음을 옮기자 몇 녀석들이 후다닥 튀어 달아난다. 아마 담배를 피우던 중이었나보다. 아이들이 몰려 있던 곳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담배 꽁초가 즐비하다. 녀석들의 달콤한 식후 끽연을 내 산책이 방해한 셈이다.
그때, 점심시간이 끝난다는 종이 울린다. 예비종이다. 이제 오 분 후면 오 교시가 시작된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벌써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거의 사라지고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막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까 운동장에서 오징어 땅따먹기를 하던 아이들이 모두 실내화를 들고 꿇어앉아 있다. 녀석들 얼굴에 땀과 먼지가 엉겨 번질번질하다.
"너희들 왜 이러고 있냐?"
내 물음에 한 녀석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실내화 신고 놀았다고 학주선생님한테 벌받고 있는 중이에요."
구해달라는 듯, 눈빛이 애원하는 것 같다. 보직 명칭이 주임에서 부장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생부장을 학생주임, 학주로 부른다.
나는 그 말에 그만 뜨끔해진다. 나도 점심시간 내내 실내화인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으니까.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들도 실내화로 교내 이곳저곳을 다닌다. 아이들은 안되고, 선생은 되고...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가질까봐 나는 얼른 내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하긴 금연이라고,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면 징계를 하면서, 어떤 선생은 수업 시간, 교실 문 앞까지 버젓이 담배를 물고 가기도 한다. 아까 담배를 피우다 도망친 녀석들이 그런 선생님을 만나면, 한 시간 내내 담배 생각이 간절해 수업도 망치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는 책을 주섬주섬 챙기고 교실로 향한다. 늘 같은 하루의 오전이 끝나고, 또 같은 오후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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