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게 집 짓는 사람들

이형덕의 <전원일기>

등록 2002.05.31 22:42수정 2002.06.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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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자서 집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이 모자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집을 스스로 짓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요. 주로 시간이 많은 화가들이 지니고 있는 감각과 여유 있는 시간을 바탕으로 기발한 집들을 스스로 짓고 있지요. 그 가운데서도 우리 마을의 개울 건너편에 집을 짓는 분의 집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우선 땅의 모양을 살려 에스자형으로 구부러진 집 모양도 그렇지만, 조소할 때 익힌 용접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철제들을 일일이 잘라서 집의 골조를 세웠다는데, 그 높이가 거의 웬만한 집 3층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혼자서 그 무거운 철제들을 들고 올라가 공중에서 용접을 하였다니, 거의 나뭇가지를 물어다 까마득한 나무에 집을 짓는 새들이나 다름없지요.

새에게는 날개나 있다지만, 혼자서 기다란 철제들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이리저리 거미줄 같은 지붕 골격을 연결한 솜씨는 새보다 더 뛰어난 일입니다. 더욱이 고소공포증까지 있다는 분이 까마득한 지붕에 올라가 그 일을 해냈다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 거들어 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몇 배나 쉬웠을 일이었다고 합니다. 망치를 지붕에서 떨어뜨려도 밑에서 줄에 매달아 줄 사람이 없어 그때마다 그 높은 사다리를 되내려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니, 이건 집 짓는 게 아니라 거의 믿음 독실한 사람의 공역이나 다름 없습니다.

더욱 기막힌 일은 가로 세로로 짜여진 기하학적인 철제 구조물 사이로 벽체를 쌓는 소재가 나무토막이라는 점입니다. 폐자재 각재들을 가져다가 그것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 그 토막들을 조적조 벽돌 쌓듯이 벽체로 쌓고, 일일이 못으로 박아 연결했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선 기가 질리게 합니다. 무엇보다 각재에 고슴도치처럼 박힌 못들을 뽑아내는 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바닥을 레미콘으로 기소를 잡은 후, 그 위에 철제를 연결할 때는 직접 거푸를 만들어 콘크리트를 양성하였답니다.

그 일을 혼자 해내면서, 집주인은 공사장 옆에 움막을 짓고 거기서 겨울을 났다고 합니다. 개 서너 마리와 침대에서 부둥켜 안고 추위를 견뎠다니 이건 정말 정성을 넘어 거의 구도에 가까운 고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급히 한쪽 내부에 방을 들였는데, 작은 창들이 일렬로 이어진 방은 거대한 범선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황토에 오공본드를 배합하여 벽칠을 하고, 구석에 윗턱이 비스듬히 잘린 채 마련된 화장실은 인사동의 화랑에서 볼 수 있는 설치미술작품과 진배 없었습니다.

집 주인의 기발하고 대범한 착상은 지금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 다시 집을 짓는다면 다음엔 벽체를 나무토막으로 하지 않고 빈 병으로 하겠다고 합니다. 사각으로 각이 진 드라이진 병을 쌓겠다니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참신하기만 합니다. 또한 벽체에 쓰이는 단열재도 스티로폼 대신에 볏집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쓰면 된다는 생각도 기발하였습니다.


그 옆에 역시 집을 지을 준비를 하는 화가 한 사람은 한 술 더 떠서 하늘에 떠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데 거대한 기구를 바닥에 붙여서 공기를 부양한 후 그 위에 집을 짓겠다는 발상은 거의 초현실적인 미술작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 밖에도 비스듬한 땅을 그대로 파고 들어가 터널식으로 안을 마감한 후 입구에만 문을 만들고 나머지는 흙으로 덮은 후, 쓰다 버리는 대포를 주워다 그 위에 얹어 놓겠다니 말 그대로 이것은 군부대의 지하 벙커를 연상시킵니다.

무쇠판을 잘라 직접 만든 엄청난 크기의 화목난로 앞에서 막걸리통을 갖다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 지으려면 앞으로도 한 삼 년쯤 걸릴 것 같다는 집은 건축물이 아니라 작가의 정성과 혼이 담긴 치열한 작품이라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제 살 집을 수수깡 베어다 이엉을 엮고, 뒷산에서 퍼온 진흙을 척척 발라 벽을 잇고, 개울가 돌들을 주워다 구들을 들이던 예전의 시골집들을 생각하면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짓는 게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제 모두가 자기보다 남의 일에 묶여 지내다 보니, 예전의 그 흔하던 여유도 사라지고, 함께 이엉을 엮고 들보를 올릴 이웃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니, 결국 자신이 살 집도 남에게 맡겨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집들이란 게 너나없이 비슷비슷하고, 이렇게 별난 집을 짓는 분들의 이야기가 새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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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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