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붉은 악마, 우리도 한마음으로 같이 뛴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내가 만난 노인들 (2)

등록 2002.06.11 13:06수정 2002.06.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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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1: 1로 아쉽게 끝난 오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대~한민국의 구령소리에 맞춰 박수를 연습하는 소리가 난다. 끝내 맞지 않았지만 박수 소리가 오히려 정겹게 들려온다. 물리치료실 밖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은 "머리에 피흘리며 경기하는데 마음이 싸한 것이 아프더라구..." 하며 연신 황선홍을 걱정한다.


6월 10일 아침부터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 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응원 연습을 하고 한편에서는 얼굴에 페이스 패인팅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나라가 이기기 위해 얼굴에 크게 태극기를 그려달라고 주문하기도 하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에서 기대와 설레임이 묻어 나왔다.

경기 시작 전 30분부터 강당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앉은 300여명의 어르신들은 또 하나의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응원단장으로 선정된 어르신들은 앞에 나와 힘차게 대~한민국을 외쳤고 그에 맞춰 박수를 쳤다. 대~한민국이 응원단장을 통해 대한~민국의 타령식으로 나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박자가 틀리는 박수 소리를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어르신 붉은 악마'는 젊은 붉은 악마 못지 않은 열정과 열기로 강당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경기가 시작되며 어르신 붉은 악마단은 환호성을 지르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중간 중간에 연습을 해도 여전히 박자를 못 맞추는 어르신들의 얼굴 표정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미국 국가 연주 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어르신들 모두 일어나 엄숙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며, 승리의 염원을 다짐했다.

한국이 안타깝게 꼴을 못 넣을 때는 아쉬운 손벽을 치다가도 응원단장의 목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을 힘차게 불렀다. 우리가 페널티킥을 넣게 될 때는 숨죽이며 지켜보다 이을용 선수가 골을 차는 순간 벌떡 일어나 "골"을 외쳤다. 미국 골키퍼가 잡자 모두 아쉬워했지만 골을 못 넣은 이을용 선수 심정은 오죽하겠냐며 걱정하는 넉넉한 마음이 여기 저기 보였다.

후반 33분 이을용이 미국 문전으로 왼발킥을 날리고, 안정환의 머리에 맞은 공이 미국의 골문을 가를 때 어르신 붉은 악마단은 징과 꾕과리를 치며 환호의 춤을 추었다. 그동안 연습했던 대∼한민국의 박수 보다 그 동안 몸에 묻어 익숙한 어깨를 들썩이며 어깨춤을 추고, DOC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에서 나오는 관광버스 춤을 추며어르신 붉은 악마단 특유의 방법으로 흥을 돋궜다. 아쉽게 경기 종료가 선언되자 어르신들은 다시 대∼한민국 박수를 치며 그래도 잘 싸웠다고 우리 선수들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온 국민이 하나된 감격의 날!
젊은이 못지않은 어르신들의 뜨거운 정열과 넉넉하게 선수를 감싸안는 노인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우리의 인생 선배 어르신 붉은 악마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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