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신문들의 송복 타령

등록 2002.06.12 11:02수정 2002.06.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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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외로우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진정한 보수'였다. 하지만 그의 정년퇴임 고별강의는 '철부지 대학생'때문에 씁쓸하게 끝났다.'

동아일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송복 교수가 진정한 보수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그를 '진정한 보수'로 단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고별강의에 피켓 시위를 한 학생들을 '철부지 대학생'으로 매도한다. 설사 송복 교수가 진정한 보수 논객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의 강의에 온 국민이 다 같이 항의하지 말아야 하는가.

자칭 타칭 보수 논객이라면 진보의 항의도 감내해야 한다. 송복 교수는 이미 일종의 공인의 영역에 있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항의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얼마든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학생들이 스승에게 '꼴통', '닭짓'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비난하였다는 것인데, 사실 스승이란 단어는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경우에만 가능한 용어이다. 스승으로 모실 수 없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고 왜 꼴통이라 했느냐고 준엄하게(?) 일갈하는 언론의 무식과 오만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어제 연세대에서 일어난 일은 스승과 제자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신문의 입맛에 맞는 논설을 써온 보수 논객에 대한 학생들의 준엄한 평가회였다. 돌을 던지지도 않았고, 달걀을 던지지도 않았다. 다소 원색적인 용어로 피켓 시위를 하였으나 차라리 그것은 학생다운 솔직함이 담긴 공익형 시위였다.

그 누구도 원색적 용어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 미국의 국기를 최초로 태운 미국인이 미국대법원에서 '남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판결에 의해 무죄가 된 것을 상기해 보라.

윤동주, 이한열, 박종철 모두가 대학생이었다. 당시의 법으로 보면 그들은 철부지 범법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철부지 지식인'의 스승이었다. 대학생을 '철부지'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의 친일, 친독재 언론이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골통 보수나 골통 진보가 아니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경계하는 것은 말깨나, 글깨나 한다는 일부 지식인들이 특정 권력이나 언론을 편들어 곡학아세, 혹세무민하려는 작태이다. 언론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학생 시위의 의미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항의문구만을 가지고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철부지 언론'이란 말을 듣기에 마땅하다.

별 사건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신문에 대서 특필하여 얻으려는 이득이 무엇인가. 스승의 날도 아닌데 '스승=존경, 제자=순종'의 도식을 강요하려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 사건이 보수 대결집을 위한 호기로 이용되어 사주 언론 고수의 명분으로 쓰일까봐 걱정이 된다.


이제 '철부지' 신문들은 명분 없는 송복타령을 거두고 언론의 본분으로 돌아가 공정한 기사를 쓰기 바란다. 탈세 언론들은 자신들의 부도덕성을 먼저 반성해야 하며, 감히 자기들이 국민의 도덕성을 계도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을 조속히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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