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드컵 8강 진출하던 날
사장에게 쇠파이프로 맞았습니다"

[취재수첩]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등록 2002.07.05 21:02수정 2002.07.0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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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외국인노동자들이 3일 오후 3시 경 O가구 앞에서 중국 외국인노동자 폭행사건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3일 오후 3시 경 O가구 앞에서 중국 외국인노동자 폭행사건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한국사람은 고상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뜻밖이었습니다. 중국인을 쇠파이프로 개 패듯이 팰 줄 몰랐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화가 났다. 외국인 노동자 20여명은 지난 3일 오후 3시경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위치한 ㅇ가구에 몰려가 항의시위를 했다.

지난 6월 18일 중국 외국인 노동자 우웨씨가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ㅇ가구에 찾아갔다가 사장에게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에 격분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ㅇ가구에 항의방문을 간 것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절절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도 정다운 이웃입니다. 우리도 한국을 사랑합니다."
"각목과 쇠파이프로 차라리 죽여라."

중국 외국인 노동자 우웨씨는 ㅇ가구 앞에서 보름 전 발생했던 일을 떠올렸다.

"지난 6월 18일 아내(손설매)와 제가 밀린 월급(180만원)을 받기 위해 회사에 찾아갔습니다. 회사에 찾아갔는데 밀린 월급은 주지 않고 대신 빗자루 몽둥이와 쇠파이프로 마구 때렸습니다. 빗자루 몽둥이로 패다가 부러지자 이번엔 쇠파이프로 때려습니다. 너무 아파 '차라리 죽여라'라고 고함을 지르며 쇠파이프를 잡아 내 머리에 대자 멈추었습니다. 임금 받기 위해 통역하려 간 사람도 뺨을 맞았습니다."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에 찾아갔다가 '매'만 맞고 왔다는 우웨씨 얘기는 이날 집회에 참석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에 상담을 하러 왔다가 집회에 참석하게 된 방글라데시 노동자 쟈한기(26)씨도 회사에 찾아가 치료비와 월급을 요구했다가 관리과장에게 구타당해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a  시위가 끝나고 "사장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시위가 끝나고 "사장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도금작업을 하다가 화학물질이 고무장갑 속으로 들어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사장에게 치료비를 달라고 했더니 '니가 잘못해서 다친 건데 왜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느냐'며 거절했습니다. 내 돈으로 치료했습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마음을 먹고 사장에게 치료비와 밀린 월급을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오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3차례 방문했지만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6월 29일 치료비와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에 다시 찾아갔는데 역시나 받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나와서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관리과장이 쇠파이프를 들고 와 마구 때렸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쇠파이프를 뺏자 그 옆에 있던 과도로 나를 찌르려고 했습니다. 피하다가 3m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쟈한기씨는 이 사건으로 양쪽 발바닥이 찢어지고, 오른쪽 무릎과 팔꿈치가 부러져 약 한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후세인씨는 "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한국땅에서 방글라데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힘든 일은 시켜도 좋지만 제발 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집회를 감시하고 있던 경찰들을 향해 "하루 빨리 조사해서 외국인노동자 월급 좀 받아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박 목사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떨구는 등 이들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시위 내내 가구공장의 기계는 쉼없이 계속 돌아갔고, 사장은 용달차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박 목사가 한마디를 던졌다.

"외국인 노동자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의 머리 속에 '흑인들은 멸시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인들의 피해가 심합니다."

박 목사는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 모를 뿐만 아니라 신고를 했다가 도리어 외국인노동자들이 잡혀가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폭행을 당해도 그냥 참고 넘어간다"면서 "이것도 외국인 노동자 폭행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하나의 요인이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폭행당했을 경우 노동부 근로감독과에 찾아가 하소연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아는 외국인 노동자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중국인 노동자 우웨씨는 한국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던 날 한국인 사장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쟈한기씨는 한국이 월드컵 3-4위 전을 치르던 날 관리과장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박 목사는 "한국이 스페인과 8강전을 치르던 날 붉은 응원단이 보여준 카드섹션은 아시아의 자존심(Pride of Asia)이었다"면서 "만약 앞으로 외국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아시아인들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수치심(Shame of Asia)로 기억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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