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을 먼저 피우고 쑥대를 얹어 모기떼를 쫓았다.전희식
저녁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13명이었다. 아니다. 12명이었다. 서울서 온 손님들이 두 식구 도합 5명. 전주 시내에서 매번 우리 집으로 물 뜨러 오다가 오늘 인심 좋은 시골 밥상 머리에 눌러 앉은 모녀 두 사람. 산채효소 담근 걸 먹어 보라고 몇 병 가지고 들른 진안군에 사는 후배네 두 식구. 그리고 우리 식구 셋.
막내 새들이는 이틀째 외유(?) 중이다.
내가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매~~ 밥상 음식도 골고루이고 입들도 골고루네. 서울서 온 공포의 주둥이. 경상도 문둥이 내 주둥이. 전라도 깽깽이. 워쩌꺼나~~ 신분도 골고루구먼. 주인도 있고 손님도 있고 이웃집 아저씨도 있고 여기…. 바로 여기 예고없이 나타난 불청객도 있고."
반가운 불청객
쩍 벌린 입으로 상추쌈을 가져가던 전주 시내서 온 모녀가 한마디한다.
"불청객이면 저는 가야겠네요?" 엄마가 하는 말이다. 같이 온 딸애는 진담인 줄 알고 갑자기 긴장한다. 미국서 태어나 미국 하이스쿨 2학년짜리다.
"아뇨. 원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예고없이 오신 분이 더 반갑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손님이 말을 받았다.
"그럼 다음부턴 연락 없이 와야겠네요."
"그럼 볼 것 없이 한데서 자야지 뭐. 마당에 돗자리 깔고."
내가 정색을 하고 대꾸하자 와르르 웃음보가 터진다.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種) 모두가 불청객 아니겠어요?"
농사꾼이 제일 즐거운 때는
담가 두었던 매실주를 권하며 호박잎을 된장에 싸 먹었다. 서울서 온 다른 식구가 그래도 밥값이라도 하려는지 소리나게 꿀꺽 음식을 삼키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농사꾼은 자기 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예쁘다면서요?"
"맞소, 맞소. 서울 깍쟁이들은 자기 통장계좌로 돈 들어가는 게 제일 예쁘오?"
별로 우스운 말이 아닌데도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깔깔대고 웃는다. 음식을 이것저것 젓가락으로 집어올려 가지고는 할 일없이 괜스레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하다가 입으로 가져가는 꼴들을 보고 한 마디 더했다.
"하나 더 있어요. 농사꾼이 예뻐 하는 거. 식사하면서 밥 한 그릇 더 달라는 말. 이 말 하는 사람이 농부 눈에는 제일 예뻐. 또 있다. 이것저것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면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만들어요? 저건 뭘로 만들어요? 말 시키면서 '아 맛있다. 아 맛있다'하는 것."
나는 매실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고는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밥상 위를 한참 맴돌면서 어디를 공략할까 망설이는 내 젓가락이 들깻잎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