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kintosh
우리나라에서 보수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언론이 <레 미제라블>에 쏟아대는 찬사를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의아해 한다. 어떤 신문은 "감동의 눈물" 운운하는 이야기를 넘어 "표를 살 돈이 없으면 훔쳐서라도 보라"는 기획사의 보도자료까지 인용한다. 이처럼 시장의 질서를 무시하는 "반자본적인" 발언이 보수언론에서조차 흘러나오는 판국이니, 우리나라의 혁명은 뮤지컬 하나로 불붙는 모양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폭도"라고 불렀던 신문이 "혁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말로 <레 미제라블>을 극찬하는 걸 보면서 나는 혼란스러워한다. 역시 혁명은 이렇게 순식간에 세계관을 바꾸는 모양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의 열정과 윤리적 정신은 제거하고 탐미적 비장미만 읽어내는 고도의 제련술. 우리는 이렇게 내용과 형식을 별개로 이해하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레 미제라블>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상품화된 혁명의 비장미가 가장 충실하게 거래되고 있는 곳은 바로 한국이다.
텍스트로 되돌아가서, <레 미제라블>에서 개혁에 대한 인간의 의지 이외에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삶의 무상함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자들의 삶보다 언제나 가볍다.
혁명에 피 한 방울 보태지 않은 민중들은 "그들이 약속한 신세계는 어디 있느냐"고 야속해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시민군의 시체를 뒤져 반지와 금니를 빼앗기에 여념이 없다. 오늘을 바쳐 내일을 꿈꾸던 삶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담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피를 흘렸던가.
하지만 결국 <레 미제라블>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개혁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내일"이라는 단어를 통해 제시된다. 일막이 내리기 전 무대를 채우는 "내일이면(One Day More)"은 오늘의 싸움에 지친 사람에게 내일 밝아올 희망의 아침을 약속하는 노래다.
"내일이면 우리는 신께서 천국에 예비한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한 번 더 동이 트고, 한 번 더 해가 지고, 다시 하루가 더 지나면. (Tomorrow we'll discover what our God in Heaven has in store. One more dawn, one more day, one day more.)" 그리고 두 번째 막이 내리기 전 들려오는 "저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역시 억압의 앙시레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의지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저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가.
저것은 결코 노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민중의 의지가 담긴 가락이다.
당신의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이 저 북소리와 함께 울려 퍼질 때
내일과 더불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레 미제라블>의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남자들이 무지와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여자들이 빵을 얻기 위해서 몸을 내놓아야 하는" 곳에, 그리고 아이들이 "머리를 깨우고 마음을 덥힐 책을 구하기"는커녕 점심 끼니마저 챙기지 못하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판틴의 분노와 마리우스의 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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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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