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농민대통령' 공약은 사기였다"
"국회의원도 공모자, 절대 속지 말자"

[거리로 나선 농민들] 한·중 마늘 협상 규탄 집회

등록 2002.07.23 10:45수정 2002.07.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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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중 마늘 비밀협상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 규탄 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외교통상부' '한중 마늘협상' 'WTO'가 적힌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한·중 마늘 비밀협상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 규탄 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외교통상부' '한중 마늘협상' 'WTO'가 적힌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극에 달한 농민들의 분노/김정훈 기자

한·중 마늘협상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시한을 올해까지로 정한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뒤늦게 알려진 한·중 마늘협상이 마늘농가 농민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 분명해지자 농민들은 일거리를 놔둔 채 서울 사직공원으로 속속 집합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 5000여명은 22일 오후 1시 사직공원에서 열린 '한·중 마늘 비밀협상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 규탄 농민대회'에 참석해 "한·중 마늘 비밀협상으로 농민을 우롱한 김대중 정권"을 규탄하고 "한·중 마늘 비밀협상을 전면 무효화하고 긴급수입제한조처를 연장 발동할 것"을 촉구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대비되는 흰색 머리끈에는 그들의 간절한 요구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 "외교통상부 해체", "마늘협상 백지화".

a 22일 오후 서울 사직공원에서 열린 '한·중 마늘 비밀협상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 규탄 농민대회'.

22일 오후 서울 사직공원에서 열린 '한·중 마늘 비밀협상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 규탄 농민대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늘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50만 마늘농가 농민들에게 "2003년부터 중국산 마늘이 아무런 제한없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협상내용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마늘협상을 재검토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듣기 전에는 서울을 떠날 수 없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외교통상부에 항의서한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 대표단은 내일(23일)부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다.

경남 창녕에서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석보균(49)씨는 "마늘 농사 기껏해야 평당 3000원 이문이 남는 농사인데, 중국산 마늘이 들어오면 평당 1000원도 남지 않아 마늘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이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직업이 없어져 먹고 살 길이 막히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전해진다"면서 "중국산 마늘 수입의 문제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흥상 무안군 농민회 회장은 이날 규탄사를 통해 "농민 대통령이 되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은 기만이었고 사기였다는 것이 이번 마늘협상을 통해서 드러났다"면서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국 농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남 무안에서 마늘농사를 짓고 있는 양 아무개(59)씨도 "비밀 마늘협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무안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칭송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농민들 사이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절대로 민주당 안 찍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정부에 대한 농심(農心)이 악화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사회자는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농민대회에 참석한 국회의원을 단상에 올려 "앞으로 국회에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각오를 들어봐야겠다"면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연설을 부탁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가한 농민들은 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a 손가락질 당하는 국회의원 한 여성농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마늘협상이 이렇게 된 것을 몰랐었냐'며 항의하고 있다.

손가락질 당하는 국회의원 한 여성농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마늘협상이 이렇게 된 것을 몰랐었냐'며 항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북 군위, 의성 지역 국회의원인 정창화 한나라당 의원이 한·중 마늘 협상은 재논의돼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시작하자, 농민들 사이에서 "국회의원도 공범자다", "단상에서 내려와라"라는 등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어 정 의원이 "농민출신 국회의원 46명이 국회에서 투쟁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자, 한 여성 농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국회의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절대 속지 말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원의 연설이 끝나자 조금 전에 정 의원의 발언을 저지하고자 했던 고송자씨는 연단으로 뛰어올라가 "농민들 국회의원 말 믿지 맙시다. 지금 정치연설 시간이 아닙니다"면서 "언론에서 농산물 개방 문제를 두고 '소탐대실'이라고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나서서 도와줬습니까?"라고 발언을 하자 농민들은 고씨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농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 의원 뒤를 이어 민주당 박상천 의원이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시작하자, 30대 농민은 "연설을 중단하라"며 머리끈을 풀어 자신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주위 동료들이 그 농민을 말리는 틈을 이용해 다른 농민이 박의원의 마이크를 뺏어버리는 등 국회의원들에 대한 농민의 불만은 계속 표출됐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정현찬 의장은 "외국 농산물 수입 문제를 허수아비 정권, 허수아비 외교부 대표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힘으로 지켜내자"고 농민들을 독려했다.

농민들은 이번 한·중 마늘 비밀협상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밀실협의와 관련, 농민대회를 통해 정부에 ▲ 한-중 마늘 비밀협상 전면 무효화하고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 발동하라 ▲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앞에 사과하라 ▲ 2000년 한·중 마늘협상 당시 협상 대표 및 책임자를 처벌하라 ▲ 국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진상을 규명하라 ▲ 국내 농가가 입게 될 피해에 대해 전액 보상하라 ▲ 외통부가 주도하는 농축산물 통상협상권을 박탈하라 ▲ 한·칠레 밀실협상 공개하고 전면 백지화하라는 내용의 요구사항을 밝혔다.

a 경복궁역 부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시위행렬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복궁역 부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시위행렬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농민들의 이익을 하늘같이 받들고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 때까지 굳세게 투쟁할 것이다"는 내용의 결의문이 채택되고 '한중마늘협상', '외교부', 'WTO'가 적힌 허수아비를 태우는 화형식이 거행됐다.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사직공원을 출발해 외교통상부가 있는 경복궁 정부종합청사 방향으로 행진을 했다. 경복궁 역에 도달하자 정부종합청사로 이동하려는 농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정권에 대한 분노가 행진을 가로막는 경찰들에게로 옮겨붙은 것이다. 3시간 넘게 경찰들과 농민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고 농민들은 결국 해산됐다.

한편 외교통상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갔던 대표단은 책임있는 담당자를 만나지 못해 항의서한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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