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故 신효순, 심미선양 49재] 31일, 서울 시청 앞 추모인파

등록 2002.07.31 15:43수정 2002.08.0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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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신: 7월 31일 오후 11시> "우리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a 경찰의 저지로 서울시청 앞 광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49재가 열렸다.

경찰의 저지로 서울시청 앞 광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49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기는 동포들의 많은 눈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시는 이 곳에 내 넋도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습니다."

월드컵 거리응원 인파로 붉은 물결을 이루던 서울 시청 앞 광장이 오늘은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넋을 고이 보내려는 추모인파 3000여명의 촛불 대열로 가득 찼다.

애초 '고 신효순, 심미선양 49재 추모제'가 예정된 시간은 오후 6시. 그러나 한양대 정문 앞에서 추모집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오후 4시 45분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오후 5시경에는 이미 대학생들만 1000여명이 시청 앞 덕수궁 정문에 자리를 잡았다.

행사가 시작되는 6시에는 시민사회단체 회원, 일반시민은 물론 교복을 입고 온 청소년들까지 3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전경 1500여명이 이들을 에워싸는 바람에 자리가 모자라 시청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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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동시에 백악관과 미대사관에 전달됩니다)

결국 행사가 지연되면서 6시 30분 대학생들이 공간 확보를 위해 전경들을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경기북부대책위원회 회원 한 명이 크게 다치고, 대학생 참가자 최현중(수원과학대 2년)씨가 경찰 방패에 찍혀 적십자병원에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우리는 오늘 경찰과 부딪히지 않고 평화롭게 집회를 마칠 것입니다. 경찰의 폭력 유발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마십시오"라고 방송했고 대학생들은 큰 마찰 없이 5분만에 2차선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숙제 풀겠다"

a 행사장 확보를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가 방패 앞에 앉아 있다.

행사장 확보를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가 방패 앞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추모제에서 소파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는 "누가 왜 죽였는지 너희(효순이, 미선이)는 알 텐데 죽은 너희는 말이 없구나. 살아남은 우리가 밝히고자 한다"며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의원모임' 대표인 김원웅 (한나라) 의원은 "친구는 싸울 수 있는 관계이며 정정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관계"라며 "불평등한 소파에서는 강대국의 오만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는 더 이상 총독부 중의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며 양심적 시민과 국회의원들을 규합해 소파 개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청소년들의 참여 열기를 반영하듯 이날 추모제에서는 청소년 발언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형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무대에 올라선 청소년열린학교 회원 정영혜(신월중 3년)양은 "나에게는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며 "정당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 모두 일어섭시다. 함께 외칩니다"라고 발언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정양은 태극기를 두른 이유에 대해 "미국에게 대한민국을 얕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에서, 우리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a 촛불의식을 준비중인 시민들

촛불의식을 준비중인 시민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성기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 중앙위원장은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들을 집회에 내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곧 취소되긴 했지만 청소년과 학생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후 9시경 시청 앞 추모제를 마친 시위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명동 젊음의 거리까지 행진을 하며 선전전을 펼친 뒤 오후 10시경 정리집회를 갖고 해산했다.

경찰은 행진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바꿔 선선히 길을 터주었으며 전경들은 비좁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열을 정비하는 참가자들에게 "천천히 가세요. 다쳐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명동 거리에서 밤쇼핑을 즐기던 시민들은 참가자들의 월드컵 박수를 따라하거나 선뜻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2신: 31일 오후 6시> "아픔 없는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길…"

a 31일 오후 한양대에서 고 심미선, 신효순양의 49재를 맞아 '전쟁반대·미군반대 평화인권실현 청년학생결의대회'가 열렸다.

31일 오후 한양대에서 고 심미선, 신효순양의 49재를 맞아 '전쟁반대·미군반대 평화인권실현 청년학생결의대회'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양의 49재를 맞아 '전쟁반대·미군반대 평화인권실현 청년학생결의대회'가 7월31일 오후 2시40분부터 서울 행당동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어린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전국학생연대회의, 학생행동연대, 한총련, 전국학생회협의회 등 1000여명의 학생들은 "우리 동생 살려내라" "주한 미군 철수"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결의대회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교문 안쪽으로 모여 앉은 학생들의 손에는 '6·15 공동선언 이행군 3중대' '통일 선봉대 2중대' 등 문구가 적힌 깃발과 '주한미군 여중생 사인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주한미군 철수' '재판관할권 인도' '불평등한 SOFA 협정 개정' 등의 구호를 적은 피켓이 들려있었다. 교문 밖에는 검은 천으로 둘러싼 대형 성조기 위에 효순이와 미선이의 대형 영정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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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동시에 백악관과 미대사관에 전달됩니다)

학생들은 또 영정틀을 만들어 자신들의 얼굴에 대고 "얼마나 더 죽여야 하는가, 얼마나 더 폭행을 해야 하는가"라면서 목청을 높였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윤수진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오늘은 두 중학생이 죽음을 맞은 지 49일째 되는 날로 벌써 7주가 지났다"며 "아무도 책임자를 처벌하려 하지 않고 명백히 해결하려 하지 않기에 평화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대학인들이 거리로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최방열 경북대 총학생회장은 "49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이 땅을 떠나는 날"이라면서 "두 어린 영혼이 빨리 평화로운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주한미군을 반드시 몰아내고 평화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 결의대회를 마치기 전에 학생들은 "미선이와 효순이의 사인을 규명하고 주한미군을 처벌하는 것은 짓뭉개진 자존심을 세우는 문제"라며 "우리 민중을 업신여기며 전쟁의 먹구름을 들씌우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정의로운 청년학생에게 주어진 첫째 의무로 한 덩어리가 되어 최선두에 설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의 '청년학생 공동 투쟁 결의문'을 발표했다.

a 31일 오후 6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49재 추모제에 참석하러 이동 중인 한 학생이 전경 버스에 행사포스터를 붙였다. 이내 버스에 있던 전경의 손에 포스터가 뜯겨나갔다.

31일 오후 6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49재 추모제에 참석하러 이동 중인 한 학생이 전경 버스에 행사포스터를 붙였다. 이내 버스에 있던 전경의 손에 포스터가 뜯겨나갔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학생들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범국민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으로 향했다. 이들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며 한양대부터 왕십리역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이후 학생들은 분산해서 지하철을 이용해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이석영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두 여동생들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하듯 오늘 날씨도 먹구름이 끼어 뜨거운 햇살을 가리고 있다"면서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더 이상 미군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미선이와 효순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아픔 없는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부회장은 또한 "무엇보다 안타깝게 장갑차에 깔려 희생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군이 우리 땅에 있고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우리 학생들은 또 다른 미선이와 효순이가 생기지 않도록 살인주범인 주한미군을 몰아내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신:7월31일 오후 3시40분>유족 · 동네주민들 모여 여중생 추모 49재

a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49재에서 고 심미선양, 신효순양의 아버지들이 분향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49재에서 고 심미선양, 신효순양의 아버지들이 분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7월 31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양주군 효촌2리 마을회관 앞에는 지난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고 신효순, 심미선양을 기리기 위한 49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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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모인 한 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70여명은 49재 내내 무거운 표정이었다. 영정 앞에 절을 올린 유족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없이 분향소 앞을 지켰고 특히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 정명자(40)씨는 49재 내내 손수건을 눈물로 적셨다.

김종일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a  마을주민 강신옥(76) 할머니가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사진 왼쪽)를 위로하고 있다.

마을주민 강신옥(76) 할머니가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사진 왼쪽)를 위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죽은 두 여중생에 대해 "너무 착하고 순진한 아이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너무 선한 사람은 하늘에서 일찍 데려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며 아쉬워하는 주민도 있었다.

49재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 강신옥(76) 할머니는 불교인권위원회 진관스님이 불경과 함께 추모시를 낭독하자 합장을 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신옥 할머니는 효순이와 미선이에 대해 "착한 애들이었어. 인사도 잘하고... 내 손주딸하고도 동갑내기인데 다 내 손주 같지"라고 회상했다. 강 할머니는 "너무 가여워요. 너무 안타까워. 이런 늙은이가 죽고 꽃다운 것들은 제대로 살아야지"라고 덧붙였다.

"딸들 앞세운 죄, 소파개정으로 갚아야"

이 자리에 참석한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문대골 목사는 "민족이 국토를 못 지킨 죄를 효순이와 미선이가 지고 갔구나. 이 할애비가 이 땅을 자유로운 땅으로 만들 테니 평안히 잠들거라"라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사건 이후 집회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던 의정부 시민 유순득(42)씨는 "내 딸같은 효순이, 미선이가 숨진 뒤 가슴이 아파서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심장도 안 좋아지고 위궤양도 생겼지만 너무 억울해서 나는 멈출 수 없다"며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유씨는 "이제 미국에 대고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상의 효순, 미선이에게 추모편지 보내기 클릭!
(이 편지는 동시에 백악관과 미대사관에 전달됩니다)

고 심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49)씨는 "미선이를 지키지 못한 죄값으로 죄송스럽다"며 "이 일이 불평등한 소파 개정의 계기가 되어 어린 두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a  49재를 지낸 참가자들이 고인들의 영정을 모시고 사고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49재를 지낸 참가자들이 고인들의 영정을 모시고 사고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가자들은 49재를 마친 뒤 미군 장갑차가 두 여중생을 치었던 56번 도로 사고현장까지 행진해 영정 앞에 헌화한 후 해산했다.

한편 범대위는 이 날 오후 2시 한양대 정문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오후 6시에는 시청 앞에서 범국민 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이후 8월 3일 전국 동시다발 촉구집회·평화행진, 8월 10일 서울 대규모 규탄집회 등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김종일 위원장은 "다음 주 초까지의 모든 행사는 세계 20개국 연대단체들이 범대위 일정에 맞춰 국제행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딸의 죽음 아직 믿겨지지 않는다"
어린 딸 하늘로 보내는 유족들

고 신효순양의 아버지 신효수(49)씨는 미술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딸에게 못내 미안하다. 신씨는 "재능이 있었는데 제대로 가르치질 못했다. 부모로서 뒷바라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 정명자(40)씨는 딸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다. 정씨는 "(효순이에게) 잘 가라는 소리밖에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죽었다는 말을 진짜 믿기지도 않고..."라며 연신 "안 믿겨"라고 중얼거렸다.

고 심미선양의 오빠 심규진(18)군은 "고3이라 바빠서 주말에만 미선이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함께 하면서 놀았다. 평일에는 잘 놀아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심군은 "이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프고 뭐라고 말로 표현이 안 된다"고 지금의 심정을 나타냈으며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동생에게 "그 곳에서 효순이랑 잘 지내라, 엄마, 아마, 나, 혜선이(미선이 언니)가 잘 할 테니 맘 편히 가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태어나라"고 말했다.

/ 권박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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