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행동당을 '당'으로 불러다오!

동대문과 명동에 '지구당' 개설 "활동영역 넓히겠다"

등록 2002.08.05 09:09수정 2002.08.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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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는 미디어다!'

a 티셔츠행동당의 동대문 지구당 모습

티셔츠행동당의 동대문 지구당 모습 ⓒ 티셔츠행동당

티셔츠에 철학이 있다면, 혹은 티셔츠가 미디어라면 당신은 무엇을 논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티셔츠는 미디어다!'는 창당취지를 내걸고 작년 6월 23일 창당대회를 가진 티셔츠행동당이 온라인에서만 이루어지던 정당활동의 영역을 오프라인으로도 넓혀 동대문과 명동에 지구당을 개설했다. 이로써 티셔츠행동당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온라인의 커뮤니티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셈이다.

티셔츠행동당은 평범한 티셔츠생산라인을 거부한다. 개성있고 당당하며 사회적이고 엽기적인 티셔츠를 만들어온 티셔츠행동당은 오프라인으로 지구당을 개설하기 전까지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티셔츠를 제작 주문받았다. 그러나 행동당에서 만들어진 티셔츠는 타 인터넷 판매회사의 디자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벼운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예측불허!

조선일보의 신문디자인을 그대로 이용해 안티 분위기를 한껏 살린 안티조선티셔츠, 스타벅스 로고 위로 커피를 부어버린 스타퍽스(Starfucks)티셔츠 등의 시사성 짙은 티셔츠에서부터, 멕시코 반군인 사파티스타 지도자와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그려놓은 게릴라 티셔츠는 잘도 팔려나갔다. 그뿐 아니다. 가수 한대수 등 자유와 영혼을 노래하는 뮤지션과 록가수들의 티셔츠에서부터 반사회적 식물인 마리화나 티셔츠는 매니아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역시 꽤 팔려나갔다.

a 안티조선 티셔츠

안티조선 티셔츠 ⓒ 티셔츠행동당

고등학교 때 아이큐가 두 자리수가 아닐까를 고민하게 만들던 화학의 원소주기율표를 티셔츠에 그려넣고 쓸데없는 암기력 낭비를 비판한 티셔츠는 행동당에서 만들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는 획기적인 디자인이었고, 철저한 마케팅으로 철학이 배제된 고가의 브랜드를 뭇 사람들에게 세뇌시킨 비윤리적인 기업에 딴지를 걸고 패러디한 티셔츠는 티셔츠행동당을 정말로 정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지나친 브랜드 의류선호는 가산탕진의 원인이 된다'는 티셔츠행동당의 경고는 정말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티셔츠만큼 당원들도 엽기적!'


a 명동 지구당 모습 - 감옥에서 티셔츠를 팔다?

명동 지구당 모습 - 감옥에서 티셔츠를 팔다? ⓒ 티셔츠행동당

명동 아바타(Avatar) 건물 3층에 위치한 행동당의 명동지구당은 검정색 쇠기둥으로 감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뜻 보기에 범인(凡人)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범인(犯人)들을 가둬야할 듯 보이는 명동지구당에서 느끼는 감옥의 느낌은 신선하며 그 의미는 매우 철학적이다.

"감옥처럼 만든 이유요? 경제적인 이유로는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니 감옥만한 게 없었고, 정당차원의 이유로는 감옥처럼 닫힌 이 사회를 열어보자는 개념을 이용했죠. 감옥처럼 갇혀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티셔츠행동당에서 만들어지는 티셔츠도 좀 더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행동당의 대변인이자 수석디자이너인 왕언니의 변이다.


명동과 동대문의 지구당, 즉 티셔츠를 판매하는 매장은 행동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매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행동당의 취지에 동참하고파 동대문의 좁은 사무실을 찾아오는 몇 명의 지지자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당원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사무실도 좁았지만, 워낙 일거리가 밀려 있었기 때문에 티셔츠를 사러 고객으로 찾아왔다가 밀린 일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로 돌변했다가, 불량 티셔츠를 하루 일당으로 가져가는 지지자들이 생기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a 사파티스타 티셔츠

사파티스타 티셔츠 ⓒ 티셔츠행동당

때문에 지구당이라 불리는 매장은 당원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인식, 티셔츠의 디자인을 모색하는 공간이고, 지지자들은 편하게 티셔츠를 구경하고 구입하는 공간이며, 양쪽 모두에게는 토론과 교류의 장이 된다.

티셔츠행동당의 당원들은 모두 엽기적이고, 한마디로 '깨는' 이름을 고수한다. 대변인 왕언니는 차라리 평범하다. 생산부문을 총괄하는 생산관리자는 '패션테러리스트 사관학교 교장'으로 줄여서 '변태교장'이라고 불린다. 행복추구권 투쟁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은 '노래하라', 의상 디자이너의 이름은 '더티하리',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당원의 이름은 티셔츠원단의 이름을 딴 '민이쭈리', 프로그래머는 온라인접촉위원회 '라피즈'로 불리며, 웹디자이너는 시각교란 세뇌사업국의 '조사랑했지만(줄여 조지만)'이다. 이밖에 명동지구당운영위원으로 홍익대학교에 재학중인 2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행동당의 당원 전부다.

'당이 별 거냐?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a 원소주기율표 티셔츠

원소주기율표 티셔츠 ⓒ 티셔츠행동당

티셔츠행동당의 창당 신화는 무엇일까? 'www.danchet.com'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서 단체티셔츠를 납품하는 사업을 하던 왕언니와 그의 측근들은 고객들에게 주문 들어온 디자인으로 납품만 하기보다는 아무도 안 만드는 디자인의 티셔츠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그 티셔츠가 잘 팔리지 않더라도 티셔츠에 '표현의 자유'를 입혀 '티셔츠가 미디어다'라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당이 티셔츠행동당. 왕언니는 "당이라는 것이 어차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이상 티셔츠행동당의 이름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창당 1주년을 막 넘긴 티셔츠행동당은 자금의 부족으로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잠시 휴지(休止)기간을 보냈다.

50벌 정도의 다디자인 소량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행동당은 인터넷을 통해 지난해 평균 하루 10벌의 티셔츠를 팔아왔고, 한 벌당 팔천원에서 2만원 정도 하는 티셔츠가격으로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왕언니와 가족들은 휴지기간동안 단체티셔츠를 열심히 팔아 천 삼백만원의 원단값을 모았고, 이 원단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티셔츠를 제작해 명동과 동대문의 지구당에서 판매하는 일만 남은 것.

a 단병호 위원장 티셔츠

단병호 위원장 티셔츠 ⓒ 티셔츠행동당

새 디자인으로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이 새겨진 진짜노동자티셔츠가 눈길을 끈다. 불법파업과 폭력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1년6개월간 수감중인 단씨를 만날 수 없어 본인의 허락없이 일단 티셔츠로 만들어버린 진짜노동자티셔츠는 티셔츠행동당이 1천만 벌 정도를 팔아보고 싶어하는 꿈의 티셔츠다.

티셔츠행동당은 엽기적인 디자인의 원천을 어디서 공급받을까?
바로 인터넷미디어다. 왕언니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 미디어로부터 기존 언론에서 얻지 못하는 대안적이고 싱싱한 아이디어를 낚는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티셔츠행동당은 먼저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내부회의를 거쳐 기획을 하고 자료조사를 끝낸 뒤 디자인을 한다. 며칠에서 몇 달 걸리는 이 작업은 작년 미국 9·11 테러당시에는 이틀만에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는 게릴라성 신속함을 자랑하기도 했다.

'누구나 입지만 누구나 입을 수 없는 나만의 티셔츠'

대통령부터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입는 옷, 티셔츠. 당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지금 무엇이 쓰여있고 그려져 있는가. 티셔츠를 티셔츠로 입어야 할 때가 사실 다반사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티셔츠를 철학이나 미디어로 입어야 할 때도 있다. 그 순간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당신만의 티셔츠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티셔츠행동당에서 대안적인 티셔츠 하나를 구입하는 것도 썩 괜찮은 쇼핑이다. 대중문화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개성을 입어보는 것, 꽤 신나지 않은가?

왕언니는 누구인가

▲ 왕언니
티셔츠행동당의 수석 디자이너인 왕언니(고일희)는 샤넬의 칼 라거펠트,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와 직급은 같되, 연봉이 다르다. 청와대의 박선숙 대변인과 마찬가지인 대변인이지만 그는 언니가 아니라 오빠다. 왕언니라는 호칭은 긴 머리를 파마하고 나타난 그날 이후로 운명처럼 달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앞 녹두거리에서 '스피노자의 렌즈'라는 안경점을 하던 그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4년만에 문을 닫고 평소 매력을 느끼던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티셔츠행동당 자금후원사업인 인터넷단체티셔츠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인터넷의 장점은 무엇일까? "인터넷은 물건을 강매하거나 고객을 붙잡지 않아요. 고객이 직접 서핑해 찾아오죠. 문화도 강요에 의한 주입이나 세뇌보다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

티셔츠 사업에 손을 댄지 3년이 되었다. 스쿠터를 타고 동대문과 명동을 오가는 그를 본다면 한번 불러보자. "왕언니!" 혹시 불량으로 선고받은 티셔츠를 공짜로 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왕언니는 오늘도 바쁘다. 행동당의 사이트 주소는 www.thet.co.kr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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