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천재의 “지 멋대로 피아노 치기”

Makoto Isshiki의 만화 [피아노의 숲]

등록 2002.08.06 17:01수정 2002.08.06 20:28
0
원고료로 응원
a [피아노의 숲] 7권의 표지

[피아노의 숲] 7권의 표지 ⓒ 삼양

피아노와 그것을 처음으로 접했었던 아주 어렸던 시절을 회상하는데 있어 그것을 가운데 두고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나의 어린시절의 ‘적’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쉽게 정의내릴 수 있다.

생각하건대 피아노는 그것이 가진 빡빡한 매뉴얼로 나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하였으며, 옆에 앉아 심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잔소리를 해대는 엄한 피아노 선생님의 위압으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사실 피아노에 대한 거부감은 그렇듯 피아노를 치는 어려움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더 한 것은 그것을 듣는 어려움-음악 시간에 음악 선생님들이 무신경하게 틀어놓고 졸지도 못하게 했었던 지루하기 그지없는 클래식 음악-에도 분명 존재 했기에 피아노는 나로 하여금 복합적으로 골탕 먹게 하는 존재였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름대로 ‘머리 크다’고 자부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피아노는 분명 매력적인 존재이다. 언젠가 주변인들과의 갈등으로 기분이 상해서 어두운 방에 홀로 누워 있게 될 때, 피아노 음악을 가만히 들어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풀리는 것을 알 수 있고, 잠이 안 오는 깊은 밤, 편안하게 꿈나라로 보내주는 역할도 피아노 음악이 한다. 그렇듯 생각건대 피아노 음악은 사람의 자잘한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을 보듬어 주는 섬세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 어릴 적의 피아노와 지금의 피아노에서 느끼는 바가 이토록 다른 이유는 대체 어떤 것에서 기인한 차이인가.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완전히 같을 수 없고, 그렇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도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심코 피아노 음악을 접했을 때의 단순한 ‘듣는 기쁨’이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닐까.

a 피아노의 숲

피아노의 숲 ⓒ 삼양

[피아노의 숲]


“숲의 가장자리”라 불리우는 윤락가, 몸을 파는 이들의 보금자리가 밀집된 곳에서 엄마 레이코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카이는 “듣는 이를 설레게 하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이른바 피아노 천재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숲속에 놓여있던 피아노.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이 숲속의 피아노는 카이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라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는 신기한 피아노다.

사실 이 피아노는 과거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사고로 인해 왼쪽 팔을 쓸 수 없게 된, 이제는 시골학교에서 음악 선생을 맡고 있는 아지노라는 인물의 것이다. 아지노는 사고로 ‘자신만의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자신이 스스로 버린 피아노를 찾아 시골 초등학교로 오게 된 것이었다. 여하튼 숲 속에 버려진 자신의 피아노를 치고 즐거워하는 카이를 보고 그가 천재임을 발견한 아지노는 카이를 콩쿠르에 출전시키고 손수 피아노를 가르치는 등의 열의를 보이며, 카이를 장차 세계로 내보내 천재 피아니스트로 키우리라 마음먹는다.


이 작품의 스토리 라인을 간단히 요악하자면 ‘한 어린 피아노 천재의 이야기’라는 말로 압축이 가능하다.

또한 이 피아노 천재는 극중에서 숙명적인 라이벌을 가지고 있으며 만화는 천재와 그 라이벌과의 경쟁구도로 좁혀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 숙명적이라 할 라이벌은 카이와 같은 천재라기 보다 범인에 가깝다.(이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의 천재와 범인의 대결구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카이의 환경은 숙명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슈우헤이의 환경과는 비교도 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하기 그지없으며 카이는 이것을 자신의 천재적 재능으로 극복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기존의 여러 작품들과 여럿 겹치는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을 법해 보이는 이 작품은 매우 고전적이라 할 ‘고독한 천재의 성공기’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내용 전개의 방식에서 많은 작품을 답습해 왔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특성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작가가 주인공인 카이를 천재로 정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데 주인공 카이는 콩쿠르에서 악보 그대로를 완벽하게 치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슈우헤이 와는 달리 자신만의 변주를 통해서 청중과 심사위원을 놀라게 하고,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인식시킨다.

이 피아노 천재의 변주는 ‘자신의 피아노’를 찾아 ‘자신의 피아노를 친다’라는 것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며, 카이가 단지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극중의 설정과 맞물려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카이는 이 자신만의 연주를 프로 피아노를 동경하는 친구인 슈우헤이 와는 다르게 즐기고,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도 깊은 만족을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카이와 슈우헤이와의 대결 구도와는 다르게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피아노를 칠 때 마다 궁극적으로 대결하게 되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설정이다. 그것은 [피아노의 숲]이 가진 기존의 작품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a 만화 [피아노의 숲]은 오랜만에 만난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만화다

만화 [피아노의 숲]은 오랜만에 만난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만화다 ⓒ 삼양

이렇듯 만화 [피아노의 숲]의 스토리 라인과 기본 설정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으면서도 매우 탄탄하며,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그 드라마성에 있어서도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림 외적 요인이 뛰어나고, 강조가 된다는 사실은 만화의 그림이 상대적으로 빈(貧)해 보이게 하는 요소로써 작용하기도 한다.

요컨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필자의 감흥은 그림 체의 빈약함에 대한 모종의 깔봄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사실 만화 [피아노의 숲]의 그림체는 일본 작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다지 화려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인물들조차 지극히 ‘꽃미남’이라는 등의 극적인 구획이 나누어지지 않는, 초라하다 할 그림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누구나 일련의 어색함과 부적응감을 느낄 지도 모를 일이다.

a 천재 소년 카이와, 아지노

천재 소년 카이와, 아지노 ⓒ 삼양

하지만, 이 만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잣대라는 것은 중요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투박하며 소박하다할 그림 체는 한권 두권 그것을 접해가는 독자로 하여금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에 몰두하게 하는 일련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요인이기도 하고, 만화가 궁극적으로 혹은 내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매뉴얼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것을 만들면서도 기쁠 수 있다”라는 차원에서 그것을 볼 때 작가의 그 그림체가 아니라면 그가 이 만화가 내포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으리라,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남 따라가기 바쁘며, 정해진 매뉴얼대로가 아니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아가는, 재미없고 힘든 일상의 연속에서 “꼭 정해진 대로가 아니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만화 [피아노의 숲]은 오랜만에 조우하는 여유와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만화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건 그렇고 만화가 무난히 묘사하고 있는 피아노 음악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설레임과 매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공유할 수 있는 기쁨”에 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작가:Makoto Isshiki
출판사:삼양 출판사
가격:3000원

덧붙이는 글 작가:Makoto Isshiki
출판사:삼양 출판사
가격:3000원

피아노의 숲 1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삼양출판사(만화), 201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