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전쟁'을 다시 보는 이유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에서 프랑스와 미국은 왜 패배했을까

등록 2002.08.12 17:55수정 2002.08.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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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 미국인들이 '보이지 않은 전쟁'이라고 말하는 베트남 전쟁은 전장의 지형적 특성, 즉 정글 전투를 일컫는 유행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편 백악관과 미 군부가 무리하게 강행한 전쟁이었다는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맹목적인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미국은 베트남 전에서 5만7천명의 젊은이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들 중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직접 전투 또는 교전에서 전사했을까. 미국은 55만명을 파병했는데 이들 중 전투병 숫자는 1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지원병력이었다는 뜻이다.

신간 마이클 매클리어의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유경찬 옮김,을유문화사 편)'에 나오는 말이다.


"전투병의 평균 연령은 18세, 가난한 백인과 흑인 청년들로 채웠다. 백인 고학력자 상류층은 캐나다로, 영국으로, 멕시코로 줄줄이 빠져나갔다."

마이클 매클리어의 회고에서 보듯 이 책은 미국의 패배가 '보이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목표와 전략이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없었다"는 존슨 행정부의 국방장관 클라크 클리퍼드의 술회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미국인에게는 목표가 없어서 '보이지 않은 전쟁'에 머물렀다면 베트남인에게는 어떤 전쟁이었을까.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위한 민족해방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베트남인들에게는 '보이는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불렀던 베트남 전쟁의 시작은 1945년 4월이었고, 1954년 5월 디엔비엔푸 패배로 프랑스가 내려버린 '헌 깃발'을 미국이 인계 받아 전쟁이 끝난 것은 30년이 지난 1975년 4월이었다. 이것이 10000일의 전쟁이다. 백악관에는 '얼굴 없는 전쟁'으로 미군 병사들에게는 '신비스러운 전쟁'으로 불리지만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우리에게 특히 많은 부분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패색으로 2차 대전도 저물어가던 1945년 4월 어느 날,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운남성 인근 마을, 한적한 시골 찻집에서 50대 중반의 게릴라 지도자 호치민(胡志明)과 미군 OSS(미CIA 전신)의 아르키메데스 패티(A. Patti) 소령이 마주 앉았다. 일본군의 후방교란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가 30년 전쟁의 기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패전, 베트남의 독립, 프랑스의 재점령이 이어지는 숨막히는 국제정치 질서에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식민주의는 문명의 수치"라고 호언장담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베트남 독립을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민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영국의 처칠과 프랑스의 드골이 사주한 '도미노 망령'은 루즈벨트의 발목을 잡고 만다. 그래서 베트남은 프랑스를 굴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을 계속, 끝내 미국까지 물리치는 대장정으로 오랜 식민주의 사슬을 끊는다.

루즈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닉슨, 존슨, 포드 등 7명의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의 당사자로 호치민의 카운트 파트너였던 셈이다. 케네디 때 본격 개입이 시작되어 닉슨-존슨 때 절정을 이루었고, 포드가 참전미군 철수를 완료했다.


베트남 전에 미국은 2차 대전 때의 4배에 달하는 800만톤의 폭탄을 쏟아 부었고 2400억 달러의 전비를 투입했다. 내정이 혼미하고 타락했던 사이공 정부는 부패의 온상이었지만 워싱턴은 패권, 호전주의자들에게 끌려 다녔다. 사이공의 실력자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군수품을 게릴라들에게 팔아서 이익을 챙기고 부패한 남베트남군 장성들도 덩달아 개인 치부에 열중했다. 미군 장병들은 전투경험이 없었고 장교들의 순환근무는 6개월이어서 지휘관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 이런 전쟁에서 적군 전사자 수는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고 미군은 언제나 '승리'했다.

신비한 전쟁, 보이지 않은 전쟁의 일면을 말해주듯 통일 베트남 정부는 잔후에도 사상자 수를 밝힌 적이 없다. 보이지 않은 전쟁에서 5만7천명의 미군 목숨을 잃은 미국에 비해 '보이는 전쟁'에서 베트남은 어느 정도의 희생자를 냈을까.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을 규탄하거나 전쟁에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미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행동들이 어떤 참상을 빚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디엔비엔푸 전투에도 참전한 UN주재 초대 베트남 대사 하반 라우의 얘기는 베트남이 불가피한 전쟁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바쳤는지 짐작케 해준다.


"프랑스, 미국 등과 30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약 1천6백만명의 베트남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씩은 희생되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25년간 전쟁을 취재한 저자 매클리어는 서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시각으로 '보이지 않았던 전쟁'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명분 없는 전쟁에 미군 지원을 위해 베트남에 파병했다는 이유로 '월남 패망(사이공 정부 몰락)'에 안타까워하던 때도 있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면 한 때 편향되었던 시각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든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을유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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