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오직 독립만을 위해 싸웠다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

등록 2002.08.12 18:58수정 2002.08.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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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30일,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윈난성 근처 허름한 시골 찻집에서 그저 '장군'이라고만 불리던 50대 중반의 게릴라 지도자와 미국 OSS 대원 아르키메데스 페티 소령이 마주했다.

허술한 차림의 단아한 자세의 게릴라 지도자는 페티를 보고 완벽한 영어로 "Welcome, my good friend!"라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그 촌로가 바로 20세기의 전설이 된 이름 호치민(胡志明)이었다.

1945년과 1975년 그 사이 10,000일

그리고 30년 후인 1975년 4월30일, 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금괴 2톤을 갖고 베트남을 떠났고, 부통령 구엔 카오 키 역시 남중국해 해상에 떠 있던 미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갑판에서 회한의 눈물을 뿌렸다.

그레이엄 마틴 미국대사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헬리콥터 조종사를 통해 "지금 무얼 꾸물대고 있는 건가! 이 헬리콥터를 타고 빨리 탈출하라"는 포드 대통령의 메시지가 그에게 전달됐다. 옥상에서 성조기를 끌어내린 미해병대원 두 명과 마틴 대사는 헬리콥터를 타고 사이공을 떠났다.

이 1945년 4월30일부터 1975년 4월30일까지, 그 사이 10,000일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세기 후반부를 수놓았던 전쟁, 식민주의의 쇠사슬을 스스로의 힘으로 끊었던 전쟁,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전쟁, 프랑스와 미국이 패배를 자인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등으로 표현되지만 우리에겐 '청룡, 백마부대'와 '고엽제, 라이 따이한'으로 다가오는 전쟁, 바로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얼굴 없는 전쟁, 신비스러운 전쟁으로 알려진 이 베트남 전쟁은 그러나 때로는 왜곡되기도 하고, 때로는 묻혀버리기도 한다.


이 책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마이클 매클리어 지음·유경찬 옮김·을유문화사 펴냄)은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논란이 심했던 바로 그 베트남 전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미국 군사서적클럽과 문학협회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호치민 사망 시 북아메리카 기자 중 처음으로 하노이 방문이 허용되어 호치민의 장례식과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북베트남을 취재했던 베트남전 종군기자 출신 지은이가 100명이 넘는 베트남전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기초로 제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을 토대로 쓴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들어 아는 호치민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민족주의자였다고 이 책은 말한다.

호치민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였다!

"새로운 베트남을 건설하는 데 공산주의가 타당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 호치민에 대해 미 국무부에 접수된 현지 보고서 또한 호치민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도덕적 지원을 바란다는 호치민의 애절한 호소와는 상관없이 식민주의가 젖줄이라고 여긴 영국과 프랑스에 발목을 잡힌 루스벨트는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을 겁내면서 변질된다.

그는 베트남 독립 이외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가족도, 유산도 없다. 있다면 하노이에 있는 10여평 남짓한 누옥 한 채와 20여권의 책, 그리고 타이프라이터 한 대가 고작이었다.

그는 메기 조림을 좋아했다고 한다. 미군의 공습이 극성을 부리면서 많은 곳에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 웅덩이에서 자란 메기로 조림을 해먹으면서 호치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공습을 하고 싶으면 해라. 그러면 웅덩이가 파일 것이다. 우리는 웅덩이에서 자란 메기를 잡아먹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총화력의 4배인 800만 톤의 폭탄 투하, 54만명의 미군 주둔, 전비 2400억 달러 지출, 미군 5만7000명 전사, 비행기 5700대 손실…베트남 전쟁에서 거둔 미국의 손익계산서이다.

이 전쟁은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여전히 그 의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만 앞의 그 패티 소령이 30년이 지난 뒤 글을 쓰면서 남겼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베트남은 미국의 얼굴에 남겨진 화농(化膿)자국이다. 미국의 정가는 자본주의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분위기로 젖어 있다. 이런 생각은 잘되어야 미국의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마이클 매클리어 / 을류문화사 / 624쪽 / 18,000

덧붙이는 글 마이클 매클리어 / 을류문화사 / 624쪽 / 18,000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을유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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