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보 지지층, 신문 덜 읽는다?'

중앙일보의 모호한 여론조사

등록 2002.08.17 16:49수정 2002.08.17 18:27
0
원고료로 응원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원장 김병국 고대 교수)이 공동조사해 17일자 중앙일보 미디어면에 낸 '대선 후보 지지성형과 신문열독률의 관계'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도에 의문이 간다.

먼저 이 기사는 여론조사 공표의 기본인 조사대상, 조사기간, 조사방법, 오차한계 등을 명시하지 않아 독자로 하여금 첫 문장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명백한 토대를 다지지 않은 채 허술한 결과만을 장황하게 분석해봤자 그 여론조사의 신빙성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무엇보다 그 내용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여론조사가 어떤 질문을 통해 어떤 내용, 뉴스가치를 얻어내려 했냐는 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는 이번 여론조사가 '신문의 열독률과 대선 유력 후보의 지지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 이어 '(3자 가상대결에서) 이회창 후보, 정몽준 의원을 지지하는 쪽이 노무현 후보 지지층보다 상대적으로 신문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하면서, '노 후보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신문을 덜 읽는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경도된 분석을 내놓았다.

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여전히 의문인 가운데, 조사결과에 대해서 일단 함구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분석해내는 중앙일보의 시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다음 조사결과는 지금껏 접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되는 대목이다. 일단 해당문장을 인용한다.

'한편 유권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념성향에 따라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러한 추세는 신문을 매일 자세히 보는 사람들일수록 강하게 나타났다. 이회창, 노무현의 양자대결에서 진보성향은 노무현 후보를, 보수성향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차이는 신문의 '모든 기사를 자세히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위 문장에 따르면 모든 기사를 자세히 읽는 사람들일수록 진보 혹은 보수의 색깔이 뚜렷하게 갈린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에서는 노후보 지지층이 신문을 덜 읽는 젊은세대라 했는데 진보성향이 뚜렷한 노후보 지지층이 모든 기사를 자세히 읽는 사람들도 될 수 있으니 넌센스다.


그런데, 다음의 문장을 읽으면 이 여론조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더욱 불투명해진다.

'더욱이 자신의 이념성향을 확정짓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문을 많이 읽을수록 노무현 후보에 대해 확실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이 조사의 키워드인 신문 열독률이 높은 사람들은 어느 집단인가? 이 조사에 따르면 보수성향이 짙고 신문을 자세히 읽는 층, 중도 성향이지만 신문은 자세히 읽는 층...이 두 집단은 일단 反노후보로 볼 수 있다. '모든 기사를 자세히 읽는', '열독률이 높은' 집단의 특징이 여전히 불명확하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분석의 마지막 맺음은 가관이다. 점점 샛강으로 가더니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문을 많이 보는 사람들일수록 지지후보를 바꾸는 경우가 더 많았고 지지후보를 바꾼 적이 없다는 사람들일수록 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1)
이는 신문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지후보를 얼마든지 바꿀 태세가 돼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또한 대선후보 경쟁에 있어 신문 등 뉴스매체의 강한 영향력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2)'


중앙의 기사대로 정말 '재미있는' 결과다. 현재 이 후보의 지지율은 보수결집으로 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고정층이 확고하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다. 물론 이런 의견을 무시하더라도 위 (1) 문장은 앞서 열심히 분석한 것들을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미스테리한 말이다. (1)에 대한 분석인 (2)는 전혀 엉뚱한 결말이지만 그 문장만으로는 그나마 이 기사 전체에서 제대로된 내용이다.

위 여론조사 결과와 그 분석을 한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문을 (상대적으로) 많이 읽는 층, 신문을 매일 자세히 보는 사람들
1)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의원을 지지
2) 지지 성향이 엇갈린다-그러나 중도인 사람은 노 후보에 거부반응이 있다
3) 지지후보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4)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른 분들께 맡기고 싶다.
언론이 유권자의 지지성향을 좌우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미 폭넓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 기사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분석만 담고 있어 아쉬움이 뒤따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3. 3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4. 4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5. 5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