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의 땅을 위해 깎아지른 산비탈에 맨손으로 일군 밭이 버려져 있다이형덕
일부에서는 노동력의 부족과 영세한 농지를 이유로 대규모의 기업농과 첨단기계농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우리 농촌에서 정부의 투자와 장기저리대출에 의해 시도된 유리온실, 각종 영농기계화의 설비가 의도와 달리 그 판로와 이윤 창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군사용, 식품가공용, 단체급식용 등의 대규모 수요에 대해서는 아산간척지와 같은 대규모 기업농이 필요하겠지만 실제로 전국의 농지를 그와 같은 기업화하는 것은 많은 부담과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규모의 기업농과 함께 소규모의 농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지역별로 특성화된 농업, 지역의 생태환경자원과 연계된 관광, 문화, 휴양공간으로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다량생산으로 일관된 우리 농촌이 전국 어디를 가나 비닐 하우스로 대변되는 전천후 농업은 결국은 지역별 특성을 무시하고 어디를 가나, 그게 그거이고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도 별반 차이가 없다 보니 결국은 다량생산의 가격폭락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투자와 채무를 지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각 지역의 농업이 초기에는 좀 재미를 본다 싶으면 전국에서 우르르 달려들어 몇 년 못 가 과잉 생산된 농산물들의 가격은 원가를 건져내기 어려워, 결국은 엄청난 돈을 들이부어 세워 놓은 농업시설들이 먼지에 덮이고, 그에 참여한 농가들은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니 그동안 우리 농업은 함께 죽자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안은 소량생산입니다. 품질의 차별이 없이 전국 어디서나 다량으로 생산되던 농산물들을 각 지역별로 특산화 된 품목을 잡아 집중적으로 전문화시켜 품질로 어느 지역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지역만의 전문화된 농업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참외하면 어디 참외, 수박하면 어디 수박…. 이런 식의 지역별 특성화된 농업이 분산될 때 문제는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고품질입니다. 온천지역에서 지하수의 온도를 이용해 시도되는 장어의 양식, 고랭지에서 출하되는 한여름의 강원도 배추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한 품목의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지역의 기후나 토질,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일단은 가격경쟁이나 품질면의 경쟁에서 다른 지역보다 우월함을 갖게 될 때 우리 농업은 지역별로 분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마전을 띠고 생산자나 소비자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지금의 농산물 유통구조도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그것은 마을 단위의 협업이나 작목반 등을 통한 직거래가 주효하리라 예상됩니다.
농촌은 농사공장이 아니다
이미 우리 농촌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껏 소비자들에게 지역의 특산물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충분하지 못한 입장입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앞서 말한 농촌의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역할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눈에 띠는 곳마다 산자락을 깎아내고, 밀어내서 트랙터를 밀어 넣고, 건조기를 세우고, 정체불명의 공장들을 집어넣고 곳곳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겨울이면 온통 나뭇가지마다 벗겨낸 비닐들이 덕지덕지 매달리고 소와 돼지의 똥으로 진득거리는 하수구가 된 개울에서는 농업은 오로지 농산물의 생산공장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은 보다 많이, 땅 한줌이라도 곡식을 길러내야 하던 증산정책의 시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이제는 다양해지고, 조금씩 품질 좋은 농산물을 골라서 사 먹는 도시의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일본의 낙후된 산촌마을이 자신들의 계단식 논들을 오히려 고품질의 농산물과 옛모습의 농촌을 그리워하는 도시민들에게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전환시킨 생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발경쟁에서 지형적으로 뒤떨어진 점을 오히려 새로운 활로로 마련하였습니다.
옛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깨끗한 개울의 반디와 논두렁의 야생화까지도 하나의 문화적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면서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생태환경적이며,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넓히고 홍보의 좋은 방안이 됩니다. 지금 2000여 개에 달하는 각 지역의 축제나 문화행사들이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 지역의 특성화된 개발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농촌의 모습, 그리고 그 비슷한 행사 내용들…. 이벤트사에서 주관하는 상품화된 축제의 모습들과 거기서 생산되는 지역농산물을 볼 때 도시의 소비자들이 무엇하러 먼길을 달려 그곳을 가야하는지가 의문스럽습니다. 차라리 가락동이나 경동시장에서 사는 게 더 싸고, 좋다는 말이 나오고 가수들 노래나, 댄스… 기껏해야 풍물로 이어지는 축제의 프로그램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도심의 상업적 문화행사나 방송매체들의 연예프로그램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도시민들이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그런 현란한 춤과 노래가 아니며, 경동시장에 가면 널려 있는 그런 농산물들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행사들을 하나의 상품판매장으로 인식하는 현지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심지어 산지에 가면 더 비싸다는 도시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고, 대접하는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축제 때마다 자원봉사보다는 지역농산물 판매장에만 매달려 있는 현지 주민들의 단기적인 발상이 지역축제를 퇴색시키게 됩니다.
또한 관청에서 주도하는 대규모의 지역축제들은 참여하는 도시민들이 기대하는 정서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을 주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천 명이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행사장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온 도시민들이 기대한 정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도시민들이 농촌을 찾아오는 것은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갔을 때 고향의 어머니처럼, 친척집처럼 사립문을 밀고 나와 다정히 반겨주는 그런 정감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농촌의 새로운 문화공간은 관청이나 정부가 앞설 문제가 아닙니다. 마을별로 조그맣게, 그리하여 몇몇으로 시작하여도 좋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갈 때 그곳이 단순히 농산물을 팔기 위한 백화점 홍보세일장이 아니라 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이며, 친척이며, 이웃임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