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장 '친일파 청산 중단' 놓고
애국단체 등서 '장회장' 사퇴 요구

광복회측, "장회장이 사견으로 한 발언, 곤혹스럽다" 밝혀

등록 2002.08.20 10:45수정 2002.08.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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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친일파 청산 중단' 발언으로 회원들의 사퇴 요구에 직면한 장철 광복회장.
잇따른 '친일파 청산 중단' 발언으로 회원들의 사퇴 요구에 직면한 장철 광복회장.오마이뉴스 손병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일파 청산 중단' 소신을 피력한 장철 광복회장의 처신을 놓고 광복회 내외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인규), 독립유공자유족회(회장 김삼열), 민족대표33인유족회(회장 이현기) 소속 회원 30여명은 19일 오전 광복회를 방문해 장 회장의 광복회장직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광복회의 중견회원들이기도 한 이들 3개 단체의 광복회장 사퇴 요구는 장 회장이 연이어 친일파 청산에 회의를 보이고 오히려 친일파를 비호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지난 6월1일 광복회장에 취임한 장 회장은 '친일파 청산' 문제와 관련, 잇따른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신을 피력해왔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선정 및 국회 청원은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상황에서 국민화합 차원에서 추진했던 사업이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동아일보, 6월4일)

"자꾸 친일파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국민화합에 문제가 있다. 친일파 청산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조선일보, 6월4일)

"광복회는 '박정희 논쟁'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친일파 명단 발표 같은 것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친일파들은 다 죽고 후손들이 남았는데, 그들과 마찰이 생기고 분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치 전범을 끝끝내 응징한 유태민족은 아주 독하지만, 우리는 문화인이다."(<오마이뉴스>, 8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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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는 다 죽고 후손만 남았다 그러니 이제 용서하는 게 좋잖나"

광복회의 관계자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장 회장이 별로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인데, <동아> <조선>과는 취임 직후 아직 회장으로서의 업무 파악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인터뷰가 이뤄졌고,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도 사견으로 한 발언이 보도돼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광복회는 이미 지난 2월22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한 셈인데, '광복회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화합하자'는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아울러 "역대 정권들이 친일파 청산을 계속 미루는 바람에 적절한 청산 시기를 놓쳤는데, 이제 와서 막중한 책임을 광복회가 떠맡게 됐다"며 '친일파 청산'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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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개 단체 대표들은 19일 면담에서 그 동안의 인터뷰 자료를 제시하며 장 회장의 해명과 즉각 사퇴를 종용했고, 장 회장은 인터뷰 내용을 부인하며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광복회장의 대응에도 불구, 3개 단체 대표들은 이미 사퇴촉구서를 마련하고 광복회원들을 상대로 서명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광복회장 사퇴촉구 운동은 역사 청산에 대한 시각 차이뿐 아니라 광복회의 민주적인 개편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 출범한 광복회는 '독립유공자들의 단체'라는 민족사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 올바른 위상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외의 비판을 받아왔다.

3개 단체는 "광복회가 그 동안 사회 현실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집권세력에 동조하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진정한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며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이 광복회장의 불완전한 대표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광복회장은 지명직 대의원들의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그나마 국가보훈처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취임할 수 있어 '애국지사와 유족들이 모인 단체'의 대표로서는 민주적 선출에 의한 독립적인 지위를 얻지 못해온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 동안 광복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국내파-해외파, 생존지사-유족, 광복군-비광복군 등 계파간 나눠먹기식 행태 등은 내부에서도 광복회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3개 단체의 장 회장 사퇴촉구 운동은 비단 역사청산에 관한 갈등뿐 아니라 광복회의 민주화와 재정립운동으로 파장이 확대될 전망이어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장 회장의 망언과 관련, 광복회 간판을 내리라는 격한 주장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다음은 지난 17일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광복회 장철 회장은 즉각 회장직을 사퇴하라!
- 장철 광복회장의 망언에 개탄과 분노를 표하며 -


광복회 장철 회장이 광복절 57주년을 앞두고 언론사와 가진 몇 차례 인터뷰에서 독립한 지 "반세기가 지난 상황에서 후손들과 마찰이 있을 수 있으니 화합을 위해 친일파 청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전임 회장 대에 추진한 친일파 명단 작성과 공개화(출판) 및 후속 보완작업조차도 중단하겠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김활란이나 김성수와 같이 친일행적이 뚜렷한 인물을 "본심으로 친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호했다. 이것이 생존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한다는 광복회 회장의 발언이라니, 참으로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친일파의 해악은 일제 강점기 그들의 죄상에 그치지 않고 이후 우리 현대사에 끼친 악영향이 더 크다는 데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해방 후 친일파는 자신의 친일 행각을 감추고 심지어 독립운동가로 둔갑하고 친일청산기구인 반민특위마저 무력으로 와해시켰다.

반공과 독재 그리고 냉전적 분단체제를 옹호하며 일제시기 형성된 그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일제 파시즘의 온갖 부정적 요소를 대한민국에 존속시켰다. 나아가 권력과 금력, 학연 지연 혈연을 매개로 자신의 후계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각종 기념사업을 통해 자신들을 민족의 지도자로 포장하는 엄청난 역사왜곡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친일청산은 '이미 반세기가 지난 과거의 일'이고 '친일파 후손들의 명예와 민족 화합을 위해 친일청산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장철 회장의 발언은, 우리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은 그만 두고라도 그가 젊은 시절 광복군의 일원이었다는 사실과 광복회장이 된 동기마저 의심케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광복회가 일본제국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뒤 독립운동가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관변 조직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단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이 광복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거나 주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광복회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악랄한 유신독재에 대해서도, 냉전적 반통일세력의 획책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와 정치적 타락에 대해서도 독립운동 대표단체로서 제대로 질정하지 못했고, 이로써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축소시켰다. 그리고 우리 사회 속에서 잊혀져갔다.

독립운동가들이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원로로 자리잡지 못한 데에는 친일청산이 실패하고 친일세력이 권력을 잡았다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있지만, 또 한편 부당한 현실에 대해 광복회가 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광복회는 일반 사회단체와 격을 달리하는 고귀한 애국지사들의 모임이며, 광복회장 또한 일개 사인이 아니라 이들을 대표하는 정신적 수장의 품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광복회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치는 반세기 이상을 피의 투쟁으로 일관한 항일투쟁의 선배와 동료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며 실천하는 단체이어야 한다. 광복회장은 이를 책임지고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다행히 광복회는 지난 2월 28일 여러 가지 문제와 한계는 있지만 친일파들의 행적과 명단을 조사해 공개했다.

비록 공개과정에서 명단발표에 대한 최종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지만, 작업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광복회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새로 회장에 취임한 장철 회장은 광복회를 다시 암흑의 나락으로 끌어들이고자 하고 있다.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독립운동가단체라는 이 기묘한 사태를 전 세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장철 회장은 광복회는 친일청산 대신 "선혈들의 유훈을 잘 보존하고 발굴해서 후손들에게 알리는 민족정기 선양사업"과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후생복지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광복회가 친일파 청산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들과 타협하면서 민족정기를 선양한다면 그 민족정기 선양사업이란 오히려 민족정기 훼손사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립운동 선열의 과제인 완전한 독립, 즉 친일세력 청산과 통일을 외면하고 후생복지에만 전념하겠다면 과연 누가 광복회를 진정한 독립운동가 단체라 하겠는가. 또 장철 회장의 발언은 최근 온 겨레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며, 이 또한 친일옹호세력의 바램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친일 청산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친일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사적 모독을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외람되지만 광복회의 생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또한 예전의 독립운동 사실에 안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민족의 가치관이 혼란을 겪고 부정과 불의가 난무할 때 진정 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앞장서는 존경받는 원로로서의 책무를 다할 때 그분들의 민족사적 위상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장철 광복회장이 전체 독립운동가와 광복회를 친일세력의 들러리로 전락시켜 우리의 빛나는 항일투쟁의 역사에 먹칠을 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이 부끄러운 사실이 후대 역사에 기록되는 아픔이 없기를 우리는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본 극우세력이나 친일비호세력의 망언에 대해서가 아니라 광복회장에 대해 이러한 성명을 발표해야 하는 현실에 슬픔을 느끼며, 이 글이 진정한 독립운동지사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송구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울러 친일비호세력들에게 장철 회장의 망언을 전체 독립운동가들의 뜻인 양 호도하는 책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 경고한다.

2002년 8월17일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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