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에 미쳐 앓다 간 그이는?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록 2002.08.23 18:42수정 2002.08.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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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 해도 그 갈피가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만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자연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자기의 안목이 어느 만치 가늠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어느 만치 간절하게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즐거움이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즐거움을 다르게 해준다는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얘기하는 이 글은 MBC '!느낌표'에서 전국민이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했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썼던 고 최순우 선생(1916∼1984)의 에세이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의 한 구절이다.


한국미 본성 밝힌 '동양의 안목'

한국미의 본성을 누구보다 속시원히 밝혀 '동양의 안목'으로 불리던 최순우 선생은 우리의 것이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구수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밝혀 사람의 눈을 틔워주고, 사람들의 발길을 박물관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어 한국미의 본질을 해석한 최순우 선생의 안목을 맛보았겠지만 도대체 그런 안목의 소유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할 만큼 선생의 이름이 아직 낯설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학고재)는 "'한국미'에 미쳐 살았던" 그 최순우 선생의 인간적 체취를 흠씬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산문집이어서 반갑다.

"최순우 선생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인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활까지도 세속에서 벗어나 탈속의 경지에서 의연하게 사시려고 평생을 노력한 분이기도 하다. 그 분의 평소 언행, 집과 살림살이, 공사의 직분에서의 몸가짐이 모두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의 본질과도 같았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최순우 선생에 대한 이같은 헌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문화를 즐긴 만큼 아름다운 문장"(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으로 "한국의 정신에 대한 지견(知見)과 애정의 깊이를 더해 가면서"(이흥우 시인) 최순우 선생은 한국미술사의 뿌리를 튼실하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줄기와 가지, 잎도 풍성하게 가꾸는 밑거름이 됐다.

우리 것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안목은 이런 것이다.


"첫눈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나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야 하는 근시안적인 신경질이 없으며, 거칠고 성글어 보여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시원하고 대범하면서 담담하고 조촐하다."

돌에 물을 주어 그 싱싱함을 완상한 사람

아름다움에 대한 본적과 본심에 대해 선생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태어난 핏줄과 자라난 자리에서 찾을 수 있고, 뻐기지도 아첨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선생은 멀리서 아름다움을 찾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하고많은 아름다움에 눈을 돌린다.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 추녀 끝의 소방울, 먼 산 바라보는 굴뚝, 서리 찬 밤의 화로….

"용담이나 억새 같은 마른 꽃가지를 길게 꺾어다가 백자 항아리에 꽂아 놓고 한겨우내 바라보면 싱싱하게 살아있는 꽃가지보다 더 속삭임이 절실"함을 느끼는 선생은 "돌에 물을 주어 이끼를 살리고 또 석청포를 다듬어주어 돌에 나날이 생기가 돌게 하여 그 싱싱함"을 즐겼다.

간송박물관을 만든 전형필을 비롯 김환기, 장욱진, 이상범 등 당대를 풍미하던 화가에서부터 '체골이'(바보나 멍텅구리 같은 의미) 하인, 바둑이에 이르기까지 그와 정분을 나눌 만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선비였던 선생은 결국 한국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한국적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 양식에서 우러난 무리하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아울러서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최순우 / 학고재 / 280쪽 / 9,500

덧붙이는 글 최순우 / 학고재 / 280쪽 / 9,500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 최순우의 한국미 사랑, 개정판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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