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 강제 지문날인 이젠 'NO'

지문날인 철폐 위한 토론회, 국가인권위에서 열려

등록 2002.08.28 10:34수정 2002.08.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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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문날인반대연대 주관으로 '국가신분증명제도와 국민기본권'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27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문날인반대연대 주관으로 '국가신분증명제도와 국민기본권'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석희열

지문날인반대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27일 오후 4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국가신분증명제도와 국민기본권'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국민기본권을 침해하는 지문날인 국가신분증명제도의 철폐를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는 한편 지문날인제도 폐지를 위한 1천만 서명운동에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국민대 이재승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박정희 국사독재정권이 68년 '간첩 색출'의 명분으로 지문날인을 도입한 뒤 34년이 흘렀다"면서 "파시즘의 잔재인 지문날인은 그동안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인격권과 신체의 자유, 그리고 프라이버시권을 중대하게 침해해 왔다"고 지적하고 "냉전시대의 산물인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열 손가락 지문날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국제적인 망신거리"라고 반대이유를 설명하며 지문날인을 즉각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엄지 손가락 지문이 날인된 현행 주민등록증
엄지 손가락 지문이 날인된 현행 주민등록증석희열
이들은 또 "일본이 국제적인 비난 여론으로 재일 외국인 지문날인을 폐지한 것이 1999년"이라면서 "일본의 지문날인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던 우리 정부나 언론들이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우리의 열 손가락 지문날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정부와 언론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만 17세가 되면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주민등록을 위해 열 손가락 지문을 강제로 찍게 하는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1968년 박정희가 북한의 무장침투를 빌미로 국민의 통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야당의 반대 속에 공화당 단독국회에서 예비군법과 함께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도입된 이후 그 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석희열
이날 토론에서 발제에 나선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주민등록증제도에 의해 개인은 자기의 모든 정보를 국가에 넘겨줌으로써 시민들의 욕구와 의지들이 국가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는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가 국가에 식민화되는 상황이 열리게 된다"면서 "따라서 국민들간의 정보능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일정한 사회계층은 애당초부터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그 반작용으로 국가는 전례 없이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는 역작용이 예상될 수 있다"고 현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교수는 이어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같은 자기정보통제권을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헌법 본래의 입법 취지가 무너질 가능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정치화되는 것을 차단하고 모든 국민들의 사생활 등을 감시기능으로 국가가 간섭하고 통제할 수 있다 보니 모든 기본의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초감시국가에 의한 절대권력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김기중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김기중 변호사석희열
두번째 발제에 나선 김기중 변호사는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개인의 필요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 발급을 강제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주민등록번호 보유자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거부할 수도, 번호의 변경을 신청할 수도, 번호의 조합 방법을 알 수도 없다"면서 "행정기관이 번호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어느 범위까지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주민등록번호는 천형처럼 개인에게 덧씌워진 굴레일 뿐 번호 보유자는 번호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가질 수 없다"고 신분증의 강제발급과 폐쇄적인 신분증명방법의 문제점들을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개별적으로는 지문날인의 완전철폐, 주민등록번호제도 운영에 대한 신분증명법과 같은 별도의 법률 제정, 주민등록증에 부여된 강력한 신원확인기능의 철회 및 자율발급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며 "무엇이 프라이버시이고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규정한 프라이버시보호법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국 주민등록법의 개정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열 손가락 지문날인제도 및 주민등록법에 의해 수집한 지문정보를 경찰청이 보관하며 범죄수사에 활용하는 제도는 위헌"이라며 즉각 폐지를 주장했다.

1999년 3월부터 2년 6개월 동안 서울대 문화인류학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일본 반감시네트워크 이타가키 류타(30·동경대 대학원 박사과정)는 "90일 이상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고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가서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고 13자리수의 외국인등록번호가 붙은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했다"면서 "지문 등록 수속을 할 때 직원은 내 팔을 쥐고 잉크를 바르고 등록 원지에 지문을 찍은 다음 화장지로 손을 닦게 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손 씻어'라고 했다"며 한국 관리의 조심성 없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반감시네트워크 소속의 이타가키 류타
일본 반감시네트워크 소속의 이타가키 류타석희열
이타가키 류타는 이어 "2002년 8월 5일 드디어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주기네트)가 가동되면서 일본의 모든 주민에게 11자리 수의 번호를 붙여 성명, 주소, 생년월일, 성별의 네 가지 정보에 번호와 변경 이력정보를 더한 여섯 가지 정보를 전국의 서버로 관리한다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스위치가 눌러지게 됐다"면서 "이에 대해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대운동이 일어났으며, 특히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감독 이마리오·2001년)의 일본어판을 전국적으로 상영한 운동이 풀뿌리 차원에서 주기네트 반대운동의 불씨가 되었다"며 운동의 성과를 위한 한국 국민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주민등록제도는 일종의 공동체의 멤버가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청소년기 특별한 통과의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었다"고 자신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68년 박정희의 전시동원체제로의 병영국가화가 진행되면서 주민등록제도와 예비군제도가 함께 움직임으로써 죽은 지 2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주민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주민등록제도의 개정과 지문날인의 폐지를 주장했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씨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지문날인 거부자들은 신원증명방법의 부재로 인해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상당한 침해를 받았다"고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따라 지문날인을 안하거나 반대했다는 이유로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인 참정권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지문날인 반대자들의 참정권을 마땅히 정부에서 보장해 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지문날인 거부자 수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윤현식씨는 "지문날인 거부자의 연령·계층 등이 너무 다양해서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가늠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지문날인반대연대에선 전국적으로 지문날인 거부자가 2천명, 주민등록증 미발급자가 50만명쯤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현재 지문날인반대연대 홈페이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지문날인반대연대 관계자는 최근 일본정부의 주민기본대장카드 도입 방침과 관련 "한일 두 나라 정부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연대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한일 두 나라 시민운동단체들도 연대를 강화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11월 말경 서울에서 한일 공동포럼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문날인반대연대는 올 12월 대선에 출마하는 각 당 후보들에게 지문날인 반대를 선거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대 법학과 이재승 교수는 "범죄 현장에서 수집되는 지문에서 신원이 확인되는 경우는 고작 1%에 지나지 않는다"는 2000년 경찰청에서 발표한 공식자료를 인용하면서 "지문 대조 수사는 너무 널리 알려진 기법이어서 범죄자 검거에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미국 제3항소법원 판사도 지문의 증거 능력을 일부만 인정하겠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1%도 안되는 지문 인식을 위해 5천만에 달하는 전 국민의 지문을 날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한 번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것은 경찰이 전 국민을 잠재적인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라며 지문날인이 흔히 알려진 범인 검거나 사망자 확인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타카시 프라이버시액션 대표(오른쪽)의 말을 이타가키 류타가 통역하고 있다
타카시 프라이버시액션 대표(오른쪽)의 말을 이타가키 류타가 통역하고 있다석희열
이날 토론회엔 일본 주기네트 반대 시민모임 '프라이버시액션' 시라이시 타카시 대표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타카시 대표는 "내년 8월 5일 주민기본대장카드라는 IC카드의 교부방침에 대해 일본 국민의 약 60~70%가 심각한 우려와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한국의 시민운동단체들로부터 운동의 방향에 대해 많이 배웠고 도움을 받았다"면서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많이 활용했다"며 한국민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타카시 대표는 슬라이드 자료화면을 통해 일본의 주기네트 반대운동을 소개한 뒤 "일본의 주기네트 반대운동에는 지방의원, 변호사, 개인으로서의 지방 공무원들이 중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에 지방의원이나 지방 공무원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과의 차이일 것"이라며 "전국 3240개 지자체 중 요코하마시(市), 도쿄도(都)의 내리마구(區), 스기나미구(區) 등 70개 지자체가 주기네트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자민당 의원 50명 정도가 반대에 서명했다"고 소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한 장면석희열
한편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감독 이마리오(32)씨 등 지문날인 반대자들은 지난 2일 경찰청을 상대로 열 손가락 지문 원지의 반환 및 폐기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처리정보의 정정'을 규정하고 있는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제14조 제1항과 제2항이 헌법 제37조 제2항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서울지방행정법원에 신청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이마리오씨가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기획안을 제출하여 방영을 신청한 것과 관련 지난 4월 12일 시청자 직접 참여프로그램인 한국방송공사의 '열린 채널' 운영협의회에서 방송법 등을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내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날 토론에 참가한 시민단체들은 주민등록제도의 개선과 지문날인제도의 철폐를 위해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각계인사와 국민들의 자발적인 선언운동 전개 △지문날인제도 폐지를 위한 1천만 서명운동에 동참 △주민등록증 사용안하기 운동 전개 △정부 홈페이지에 항의메일 보내기 △국민행동본부 홈페이지를 통한 범국민행동 지지글 올리기 등 지문날인 거부를 위한 범국민 행동을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지문날인반대연대 : http://www.finger.or.kr/
일본 주기네트반대모임 : http://www1.jca.apc.org/juki85

덧붙이는 글 지문날인반대연대 : http://www.finger.or.kr/
일본 주기네트반대모임 : http://www1.jca.apc.org/juki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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