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다 덕수궁이여!"

조궁문(弔宮文)...유씨 부인의 조침문에 빗대어

등록 2002.08.30 00:58수정 2002.09.02 11:55
0
원고료로 응원
이날 행사에는 여중생 등 학생들의 참가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행사에는 여중생 등 학생들의 참가가 눈에 많이 띄었다석희열
민족의 얼과 혼이 서린 옛 덕수궁터가 미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8.29 국치일을 맞이하여 퍼포먼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힘을 모아내기 위한 '제2의 경술국치 덕수궁 되찾기 퍼포먼스'가 덕수궁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 주최로 8월 29일 오후 7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민 학생 등 1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최근 미 대사관측은 오는 2008년까지 옛 덕수궁터에 지상 15층 지하 2층 크기의 미 대사관 신축 계획과 함께 2004년까지 미 대사관 직원용 8층 아파트와 미군을 위한 4층짜리 숙소를 지을 예정이라며 발표했다.

문화주권 등의 각종 만장과 함께 참가자들이 두건을 쓰고 있다
문화주권 등의 각종 만장과 함께 참가자들이 두건을 쓰고 있다석희열
이날 행사 주최측은 "문화유적지인 덕수궁터에 들어설 미 대사관 시설의 규모는 그 유례가 없는 초대형으로 연 면적 5만4976.13평방미터"라며 "이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2배에 가까운 규모이며, 말 그대로 21세기에 또 다시 제2의 조선총독부가 서울 한복판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라고 미 대사관측에 신축부지를 제공해준 서울시와 정부 당국을 비난했다.


관련
기사
- 경술국치일에 덕수궁에 고하노니

문화연대 강찬석 문화유산위원장이 '덕수궁 되찾기 조궁문'을 낭독하고 있다
문화연대 강찬석 문화유산위원장이 '덕수궁 되찾기 조궁문'을 낭독하고 있다석희열
유씨 부인의 조침문에 빗대어 문화연대 강찬석 문화유산위원장이 낭독한 '8·29 제2의 경술국치 덕수궁 되찾기 조궁문'을 통해 "오호 통재라, 원통하고 불쌍하다. 네가 이 세상에 탄생한 지 우금 수백년이라.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세상에 고(告)하노라.

우리는 특별한 재주는 없으나 오직 애국 애족의 단심으로 똘똘 뭉쳐 너를 되살려 죽어가는 문화주권을 회복하고 또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어여쁘고 착한 미선이 효순이 여중생들의 한을 풀어 줄 사법주권을 되찾아 다시는 이 땅의 백의민족이 양키에 의해 팔다리가 잘리는 일도 장갑차에 깔려죽는 일도 유구한 문화재를 침탈당하는 일도 없게 하고자 한이 많이도 서린 여기 대한문 앞에 엎드려 너에게 고(告)하노라"고 고사문을 올렸다.

덕수궁의 부활을 기원하는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신바람민족예술학교 서정숙선생
덕수궁의 부활을 기원하는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신바람민족예술학교 서정숙선생석희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인 덕수궁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조문에 이어 덕수궁이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신바람민족예술학교 서정숙 선생의 살풀이춤이 이어지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촛불을 이어 붙이며 덕수궁과 민족이 외세에 의해 당한 수모와 능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대회 주최측은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및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로 △문화재를 짓밟고 외교공관을 짓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힘의 논리에 따른 굴욕적인 외교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일제가 끊어놓은 민족정기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주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덕수궁 및 정동 일대는 근대 역사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을 들었다.


한편 대회 주최측이 준비한 영정과 현수막, 만장을 앞세운 덕수궁을 한 바퀴 도는 궁궐돌이 시민 촛불행진은 미리 길을 막아선 경찰에 의해 무산됐다.

경찰의 저지로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촛불행진이 무산되자 문화연대 강찬석 문화유산위원장은 "어린 학생들도 많이 참석한, 그것도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문화행사인 촛불행진을 경찰이 가로막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미 대사관이 들어설 예정인 옛 덕수궁터 길바닥에 누워서라도 끝까지 현장발굴을 저지하며 온 몸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낼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덕수궁 되찾기운동이 반미운동과 연계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여학생들이 촛불을 든 채 살풀이춤을 지켜보고 있다
여학생들이 촛불을 든 채 살풀이춤을 지켜보고 있다석희열
학교에서 덕수궁에 문화답사를 왔다가 이날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는 서울 장안중학교 박경희(15), 박지예(15), 정옥영(15)양 등은 "이번 퍼포먼스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을 얻었다"면서 "우리나라 사람한테 우리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경찰은 우리나라 경찰이 아닌 것 같다"며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덕수궁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은 선전물을 통해 "주재국의 궁궐터 위에 외국 대사관과 외국인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도 최근 부시 미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여사가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의 복원을 위한 지원 발표와 관련 "우리는 로라 부시여사의 의미있는 결정이 이곳 덕수궁에서도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며 한국의 문화주권을 존중하는 미국의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참가자들이 덕수궁을 한 바퀴 도는 궁궐돌이를 시작하자 경찰이 막아 촛불행진은 무산됐다
참가자들이 덕수궁을 한 바퀴 도는 궁궐돌이를 시작하자 경찰이 막아 촛불행진은 무산됐다석희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